2013. 8.27.불날. 맑음

조회 수 786 추천 수 0 2013.09.16 13:32:43

 

 

대해리 잠시 비웠던 주말, 호두들을 벌써 털었는가 싶었습니다.

어제는 내다보지 못했던 마을길을 둘러보니

호둣잎은 초록이 바랬고,

말라 떨어져 내린 것들이 길 위에 뒹굴었지요.

백로가 지나며 터는 호두입니다.

올 백로라면 9월 7일.

올려다보니 아직 호두들 달렸습니다.

계절이 그렇게 성큼 잎으로 건너와 다음 걸음을 걷고 있었던 겁니다.

대해리의 가을은 호두나무 위로 먼저 오고 있었습니다.

 

처서 지났으니 풀은 이제 더는 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벌초들을 갈 것이고,

한가위 머잖았습니다.

모기는, 입은 비뚤어지지 않았을지라도

기세가 죽었습니다.

물려도, 붓기도 가렵기도 덜합니다.

물론 한가위모기 무섭더라, 아직 그 시절 남긴 했지만.

 

운동장의 타프도 걷었습니다.

그런데, 참 희안도 하지요.

그 그늘 나무그늘에 비길 수야 있을까,

바람이 통하지 않는 그늘 밑으로

아이들도 앉지 않습디다.

그래도 그늘을 드리운 공간이 운동장 한켠 있다는 것이

뜨거운 햇볕 아래서 위안이었지요.

여름내 무엇보다 시각적으로 우리를 돕던 그였습니다.

우리는 자주 아주 작은 일로도 충분한 위로를 받지 않던가요.

그게 사람이겠습니다.

그게 삶이겠습니다.

소소함이 삶을 채우노니.

 

교문 현판 아래 걸렸던 지난 6월의 빈들모임 안내도 걷어 내렸습니다.

시인 이생진 선생님을 모셨던 안내입니다.

그냥 우리 선생님 그리 다녀가셨던 말을 오래 하고파,

계자를 하는 동안도 손이 없어 내리지 못한 게 아니라,

그리 걸어두었더랬습니다.

대문에 걸렸던 선생님의 사진 현수막들도 비로소 내렸습니다.

한 계절을 그렇게 접었지요.

여름이 갑니다...

 

밤안개에 마을이 잠겼습니다.

가을은 그 안개 사이로 길을 만들고도 옵니다.

밤은 이제 아주 썰렁해졌습니다,

낮이 아직 그토록 날카로웠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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