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30.쇠날. 갬

조회 수 699 추천 수 0 2013.09.16 13:36:51

 

 

“파지야...”

마을의 재국이 아저씨네 수확하며

살짝 흠집 난 것이라고 챙겨주신 복숭아.

바쁜 철 손 조금 보탰던 걸 고마워라 하시며.

“이렇게 멀쩡한 걸...”

그렇더라도 그게 상품은 되지 못한다지요.

어느 구석으로도 눌린 점자국도 없어야 한다 합니다.

통조림도 만들고 잼도 만들자 하다가

한참을 생과로 잘 먹겄다 싶데요.

어느 해보다 이웃에서 얻어먹는 것들로 풍성한 올해입니다.

마을부녀회장을 맡아 학교 밖을 나가기 자주였던 때이기도 해서

더 가까워진 거리 덕분이기도.

 

사택 간장집과 고추장집을 마루공사 한다 헤집어놓고

계자 지나고 또 얼마를 지났건만

정리에 손댈 엄두 못 내고 있었다가

드디어 오늘 1차 정리에 들어갔습니다.

한 번에 다하긴 어려울 테지요.

고추장집이야 짐이 거의 없으니 쓸고 닦으면 그만일 것이나

간장집은 오래 사람이 내내 쓰고 산 공간이라

세월만큼 쌓인 짐도 만만찮아,

그리고 한동안 지내지 못하고 보낸 시간 또한 쌓여

더께가 된 먼지도 많을 것이라...

우선 방으로 들어가 쌓인 물건들 제자리 보내기,

이제 더는 사람 손이 닿지 않을 것들 꺼내놓기,

수년 동안 눈에 담지 못했던 물건들 뒤집기.

 

은사님 한 분의 전화가 잦습니다.

오랫동안 산골에서 홀로 공부하던 아이가

이제 세상으로 나가 또래 아이들 속에서 공부를 좀 해볼까 한다 하니

당신이 더 자주 아이 일을 챙기고 계시지요.

몇 해 달에 한 차례 안부 물어주시더니

이제 주마다를 넘어 사나흘에 한번씩이십니다.

자식의 일에 부모가 공조해주어야 한다며

자꾸 자꾸 자극주기 하시지요.

그러한가요...

저 공부 제가 해야지...

 

고생과 성과는 다른 것입니다.

고생했다 하여 성과가 그만큼 오는 건 아니지요.

그런데도 고생에 방점을 찍어 마치 성과 또한 그러해야 한다고,

우리는 자주 자원봉사의 현장에서 그 같은 상황을 마주하고는 합니다.

세월과 성과도 또한 그러하지요.

세월을 들였다고 해서 성과 역시 그만큼 나올 수 있으리라는 착각.

그렇지 않다마다요.

아이들이 공부를 하며도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기를.

그러면 고생 혹은 세월에 대해 덜 노여울 수 있을 것이니.

우리 삶도 그럴지라...

 

‘나무들은 드문드문 들어서 있었다.

나무들은 서로 적당한 간격으로 떨어져서

저마다의 존재를 남에게 기대지 않으면서도 숲이라는 군집체를 이루고 있었다’,

라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저마다의 존재를 남에게 기대지 않으면서도,

남에게 기대지 않으면서도,

그 어절 앞에서 서성였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4726 2017. 9.25~26.달~불날. 맑음 옥영경 2017-10-31 895
4725 2017. 9.24.해날. 맑음 옥영경 2017-10-31 886
4724 2017. 9.22~23.쇠~흙날. 맑음 / 서울 강연, 그리고 사람들이 남긴 글 옥영경 2017-10-21 829
4723 2017. 9.21.나무날. 맑음 / 밤마다 엄마를 지킨 어린 오빠 옥영경 2017-10-21 880
4722 2017. 9.20.물날. 뿌연 하늘 옥영경 2017-10-21 825
4721 2017. 9.19.불날. 맑음 옥영경 2017-10-21 934
4720 2017. 9.18.달날. 바람 차고 살포시 흐린 옥영경 2017-10-21 855
4719 2017. 9.16~17.흙~해날. 살짝 비 흩뿌린 밤 옥영경 2017-10-19 965
4718 2017. 9.14~15.나무~쇠날. 맑음 옥영경 2017-10-19 869
4717 2017. 9.12~13.불~물날. 달빛 좋은 밤들 옥영경 2017-10-19 859
4716 2017. 9.10~11.해~달날. 밤부터 이튿날 오전까지 비 옥영경 2017-10-19 889
4715 2017. 9. 9.흙날. 약간 흐림 옥영경 2017-10-18 935
4714 2017. 9. 8.쇠날. 맑음 / 집짓기모임 옥영경 2017-10-17 876
4713 2017. 9. 7.나무날. 맑음, 백로 / 닭장 철거 옥영경 2017-10-17 894
4712 2017. 9. 4~6.달~물날. 맑았다가 비 내리고, 사흗날 아침 비와 바람 옥영경 2017-10-14 870
4711 2017. 9. 1~3.쇠~해날. 맑다 밤비, 그리고 개다 옥영경 2017-10-11 855
4710 2017. 8.3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7-09-29 927
4709 2017. 8.30.물날. 맑기로 옥영경 2017-09-29 878
4708 2017. 8.29.불날. 맑음 옥영경 2017-09-29 928
4707 2017. 8.28.달날. 흐림 옥영경 2017-09-29 852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