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10.불날. 비

조회 수 736 추천 수 0 2013.09.20 16:13:41

 

집을 떠난 지 한참 되었습니다.

공장을 새단장하는 현장에서 나무 다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드레째.

이제 꽤 익어져 마치 다른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것만 같습니다.

공사현장이 주는 날것의 신선함에

힘은 겨우나 새로운 배움에 흥이 배가 되는 날들입니다.

그만큼 물꼬를 여러 날 비워두고 있지요(9월 위탁교육은 11월로 보내졌습니다).

옥샘이 있는 곳이 물꼬지, 그 말을 위안 삼습니다.

 

오늘은 층계참을 중심으로 위쪽 계단을 따는데,

자꾸 오류가 생깁니다.

도면을 날린 후 다시 다 그리기보다 대충 그린 게 결국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아, 제가 도면을 그린 건 아니고.

좀 귀찮아도 정석대로 걷는 걸음, 그런 생각했지요.

준비기에 조금 더 시간을 더 들이는 게

종국에는 전체적인 공정을 훨씬 줄여주고 편하게 해준다는 새삼스런 깨달음.

선배가 치수를 다시 계산하는 동안,

직소를 써서 원형의자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앉는 목적이어도 되고 소품을 얹어놓기도 좋은.

원형스툴이라는.

딱히 가르침에 초점을 두지 않고

현장에서 필요한 일들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배움도 좋고,

꼭 무엇을 가르치지 않아도 뭔가 마음에서 일어나고 그것을 해보는 배움의 과정이

아주 즐거운 때입니다.

 

헌데, 집으로 돌아갈 날이 되긴 되었나 봅니다.

낼모레 갈 줄 어이들 알고

물꼬 들어가야 할 일들이 한 번에 굴비 두름처럼 왔지요.

추천서 하나를 바삐 써야 하고,

시월에 시화전을 여는 이들이 원고를 청탁했고,

문관부와 한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인문학운동 관련 현장 체험에 대한 강의도 요청,

그리고 붓글전시회도 한다 작품을 부탁했네요.

그찮아도 내일 일 끝내고 저녁에는 서울로 들어가려.

하루 묵고 대해리 내려갈 계획이었더랍니다.

 

지난 주말 물꼬를 방문하기로 한 선배들이 이곳 현장까지 왔습니다.

맛난 밥도 먹고 곡주들도.

숙소에 모여 밤늦도록

이 시대를 어떻게 건너가고 우리 삶의 방향타를 어떻게 놓을 것인가,

그리고 각자의 삶에서 무엇이 유의미할 것인가 물었습니다.

젊은 날에도 물었던 것들, 어쩌면 사는 동안 끝날까지 물어야 할 질문.

그대는 어디로 가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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