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13.쇠날. 흐림

조회 수 782 추천 수 0 2013.09.25 01:14:37

 

 

대해리는 병색이 짙은 노인네처럼 흐린 가을로 아침을 엽니다.

집 떠나 있은 지 오래라고

아무리 편해도 남의집살이 마음이 나름 긴장이었나 봅니다.

건축현장일도 만만찮았고.

모든 피로를 안고 와서 늦도록 자고 또 자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종일.

 

식재료 칸에는 가지와 호박과 풋고추 잔뜩 쌓여있습니다.

그리웠던 우리 푸성귀들.

반찬을 합니다.

내 손으로 우리 키운 것들로 차려먹는 밥상의 따스함.

아, 좋습니다!

 

복숭아통조림도.

지난번 집 떠나던 날 만들어 둔 것들,

냉장고에 넣어지지 않아 벌써 흐릿한 것이

아무래도 변하기 시작한 것.

병에 넣어 달라 부탁하고 갔는데,

저장고에 넣으란 말은 잊었더랬네요.

상온에서 열흘을 넘게 있었으니.

하기야 만들 때도 너무 물러져 좀 아쉽기도 했더랬습니다.

마침 복숭아가 또 와 있습니다.

마을의 한 농가에 보탠 일손이

그렇게 또 세경처럼 왔던 것.

하여 만드는 통조림.

손이 좀 더 들어간다 싶어도 자르고 껍질을 벗기니 덜 무릅니다.

색도 곱고 맛도 그만!

여러 병입니다.

우리 아이들 올 때까지 남아얄 것을.

뜨거울 때 넣고 뚜껑 닿지요.

내일은 서늘한 곳에 넣을 것입니다.

 

대해리 들어온 줄 어이 아시고들

여러 어르신들의 연락.

지역에서 함께 발효식품학을 공부했던 어르신의 안부도 들어오고,

한 선배가 보낸 고맙다는 인사도.

영적세계에 관심 있는 이들의 마음 우물을 파주었던,

그것만으로 이생에서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도 드는 한 선배에게

며칠 전 다녀가는 길 객비를 드렸던 일 있습니다.

물꼬 오는 차표를 끊어드린 셈이었는데,

그쯤은 당연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었건만,

그 고마움을 차표가 아니라 차로 여기시며 감사인사 했고,

감사인사가 제게 이르러선 차를 넘어 세상이 되더이다.

 

엊그제 인문학운동관련 강연 요청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할 말이 있다 싶으면 할 것이고 아니면 못 하겠다 할 거랬는데

물꼬에서 한 작업을 나눠도 좋겠다 생각되었지요.

“그런데 발표자로보다 토론자로...”

그리 하기로 했습니다..

오는 10월 16일 물날 서울에서.

문제는 갈 수 있는 날이냐가 중요.

가능하겄습니다.

 

이장님댁 건너갑니다,

산마을을 비운 동안 별일은 없었던가 하고.

오래 병석에 계셨던 한 어르신이 또 세상을 버리셨다 했습니다.

아주머니 혼자 남으신 자리가 얼마나 쓸쓸하실 거나.

밝은 날 들여다봐야겠습니다.

“이거 먹고 가아.”

삶은 밤을 잘라주시는 이장님.

“아부지 같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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