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기세로 비 내리는 아침이었습니다.

컴컴한 오전.

논어강독으로 가는 길을 나서기에 엄두가 안 나도록 어둔 하늘.

“화양계곡은 비 안 오는데...”’

그래도 나무다루기 현장에서 가져온 고단을 풀기로 하고

강독자리는 다음 기회로.

 

지난 8월말 은사님 재직하신 학교에 잠시 들렀더랬습니다,

필요한 물건들을 좀 챙겨놨다셨기.

오래 산골에서 혼자 공부하던 아들이

이제 또래 아이들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며 학교를 가볼까 한댔더니

은사님 전화가 더 잦고,

문제에 더한 적응이 필요하다며 모아둔 자료도 가져가라셨지요.

부탁했던 자료도 그 다음날 당장 이웃 학교 교사로부터 가져다도 놓으셨고.

그때 출장길이어 실어갔다가

돌아와 늦은 밤 한 곳에 부려놓기만 했던 짐들을

오늘에서야 정리.

소사아저씨가 부탁한 도끼에서부터 부엌칼들과

원형등받이의자며 이젤이며 학용품들,

은사님은 달력 귀퉁이에 보낼 물건들을 적어두셨고

체크하며 실어주셨더랍니다.

물꼬 다녀가며 이곳저곳 눈여겨보시더니

필요하겠다 싶은 물건들을 그리 가늠하셨던 듯.

요긴한 물건이 한둘이 아니었지요.

마지막으로 당신 목에 오랜 세월 걸었던 호루라기를 벗어주셨습니다.

가슴 먹먹해지는...

나중에 들러도 될 일이었으나

마침 사모님이 빵을 만들어 보낸다고도 하셔서 그날 들렀던 것.

지난번 다녀가시고 고마운 인사 꼭 그리 하고파셨던 당신이었지요,

나중에 당신이 만드는 마늘고추장 보내실 때 주셔도 되건만.

고마운 인연들입니다.

사람의 삶이 그런 연의 씨줄과 날줄의 베짜기일 것이니.

 

노작가의 책 한 권을 쥡니다.

나무 다루는 현장의 사무실 책상에 아무의 손도 닿지 않은 채 있는 것을

빌려왔던 것.

잘 쓴 글도 아름다운 풍광만큼이나 우리를 위로하지요.

그대는 요새 무슨 책을 읽고 계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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