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16.달날. 맑음

조회 수 752 추천 수 0 2013.09.25 01:18:08

 

한밤중 한 시간여 사이로 잠이 두어 차례 깨고

새벽 4시에 이르기 직전 결국 이부자리를 차고 나와 책상에 앉습니다,

자려고 애쓰는 시간이 더 힘들겠다 싶어.

여기는 남도.

명절은 늘 물꼬에서 쇠어왔습니다.

물꼬로 설과 한가위를 쇠러 오는 이들도 있고.

하여 그 앞뒤 주말에 어른들 뵙는데,

이번엔 주중 평일로 잡아 내려왔습니다.

집안 어른들이 마냥 좋아라 하시지요.

“추석도 쇠고 가지...”

올해는 그럴 만도 하건만, 한가위 다음날에나 사람들이 인사를 온다하기,

또, 마침 올해부터 아이 친가에서 추석차례를 지내게도 되어

추석 아침을 예서 맞긴 어렵겠고.

 

오전, 교무실에서 미뤘던 글들 좀 쓰고

물꼬 누리집의 ‘물꼬에선 요새’도 기록도 하고

부랴부랴 살림도 이러저러 정돈하고

그렇게 내려온 남도입니다,

입었던 옷에 슬리퍼 끌고 질끈 묶은 머리 그대로.

친정은 그리 와도 되는 곳.

왜? 친정이니까요.

집에 오면 말마다 시큰해집니다.

불쌍한 울 엄마.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늘 그렇습니다.

제주도 여행에서 보라는 바다도 섬도 바위도 굴도 꽃도 다 두고

뭐라도 발라야 한다며 딸 목주름만 들여다보며 안쓰러워하고,

손자가 따로 멀리 가 저 알아 온대놓고 어둑하게 늦어져 엄마를 부르자

왜 내 딸 힘들게 하냐 손자에게 넌지시 핀잔주는 엄마, 울 엄마.

딸 오면 다 먹지도 못할 것들 딸 좋아하는 것들로 잔뜩 음식을 쟁여놓고

과일로 냉장고도 채워놓고는

부랴부랴 창틀 먼지를 닦는다는 울 엄마,

딸년 눈에 걸릴까 하여.

무슨 놈의 딸이 손님이 되어버린.

우리도 나이 들면 자식들 눈치가 그리 보일 것인가요.

추석에 니 얼굴 보고 있으니 명절 다 쇠었다시는,

그 말 한마디에도 코끝 찡하고.

한 신도시로 들어가 잠시 살던 아이 외가 살림은 다시 접어져

농장 가까이 농가를 구해놓으셨습니다.

“딱 네가 좋아할 집이다.”

그건 규모가 적다는 말일 테고, 정원이 예쁘다는 말일 테고,

그리고 울타리가 나지막하다는 말씀.

그러했습니다.

너른 들을 내다보고 산기슭에 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게 건너다 보이고.

물꼬의 논두렁이기도 한 집안 어르신들...

사는 끝날까지 자식바라지에,

그리고 저승에도 자식 살 집 지으러 먼저들 떠나시는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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