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들어온 작가 부부와 식구들이 함께 달골 호두를 텁니다.

“물꼬 전략이어요.”

밥을 멕이고 잠을 재워, 그렇게 빚을 지워 은혜를 갚게 한다?

“오늘 호두 같이 털어요.”

다들 달골 모여 가벼운 아침밥을 먹었지요.

그 사이 작가 양반은 윗마을 끝까지 밟고 왔더랬습니다.

그런데, 비탈의 너무 높은 가지는 결국 어쩌지 못해

가난한 결실이었네요.

여우의 신포도처럼 물꼬의 신포도가 되어 매달린 호두를 뒤로 두고

잠깐의 수확물을 싣고 산을 내려왔지요.

 

사람의 시간은 쌓이는 물건으로 치환되나 봅니다.

흐른 시간은 거기 고래방 뒤란 곳간을 채웠더랬지요.

한 때 물꼬의 부엌이었던 곳과 씻는 곳.

숙직실이었던 자리를 뜯어내고,

지금은 건축계에서 제법 자연건축으로 이름을 날리는 벗이,

그때는 막 혼례를 올리고 건축현장의 끝자리에 있던 그가

물꼬 남자샘 하나와 같이 겨울이 오는 대해리에서 지어낸 건물.

2003년 가을까지 거기서 밥을 해서 아이들이 퍼다 날랐고,

거기서 샤워도 했더랬습니다.

“자, 다음은 고래방 뒤란 곳간 물건들을 좀 빼지요.”

사람들 있을 때 손대겠다 여러 계절을 벼르던 일입니다.

청소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곳에 손닿기,

보일 일 잘 없는 곳이어 더더욱 하고 말겠다 마음먹게 하던.

들어만 가고 나올 일 없던 물건들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그저 엉켜만 있던 창고입니다.

어찌어찌 꺼내만 놓으면 또 어찌어찌 정리가 될 테지요.

어깨앓이가 좀 있던 창환샘도 손을 보태다

그만 손가락에 피도 보았더랬네요.

다 꺼내고 볕과 바람을 좀 들이는 시간 동안

산골 국수로 사잇밥을 먹었더랍니다.

손님들도 보내야했고.

 

아이가 있어야 일이 됩니다,

힘으로든 정리로든.

다시 물건을 들이는 일은 아이가 진두지휘를 했지요.

더는 안 쓰겠다 던져낸 물건도 있지만

언젠가 또 잘 쓰겠다 도로 들어가는 것들도 있습니다.

“광평에 보니까 창고 지으면서 이런 거 다 쓰더라.”

아이가 장차 달골에서 도모할 일을 헤아리며

뭐라도 지을 때 쓰자며 그리 챙겨 넣고 있었지요.

 

떡 본 김에 제사라고 창고를 정리하니 그 앞에 풀도 보이고

뒤란 구석구석 어느새 또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처럼 엉킨 물건들도 보이고

태워야 할 썩은 나무들도 보이고...

뒤란의 풀을 잡기 시작합니다.

이제 더는 자라지 않을 계절이니 풀과 맞설 만하지요.

숨꼬방과 고래방 사이 통로의 풀을 다 잡고

벽 아래 물처럼 고인 마른 잎들도 긁어내고 불을 놓습니다.

고래방 뒤란 벽면을 타고 쌓인 물건들을 자리 잡아주고,

우물터도 우물 자리답게 풀을 뽑고,

어느새 쓰레기장처럼 물건들 몇 개씩 들어간 후미진 곳도 후벼내고,

동쪽 개울과 이어진 뒤란 가장자리 풀을 뽑고...

그러고 있자니 풀풀거리며 날던 쓰레기들이며 풀에 덮인 나무 아래도 선명하여

풀을 계속 뽑아내지요.

아, 시원합니다.

정말 너른 뒤란!

어느새 해진지도 오래, 어둑해진 하늘,

그제야 저녁밥상을 냈더랍니다.

 

무를 한동안 솎았습니다.

다듬어놓고도 여러 날 지나쳤네요.

오늘은 열무처럼 김치를 담았지요, 한밤에.

여름은 여름대로 푸성귀들이 주는 밥상이 풍요롭더니

이 가을은 가을대로 또한 그러합니다.

노각과 고추와 파와 고구마줄기와 때늦게 달리는 호박들...

사람의 일도 갈무리가 야무진 가을 들머리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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