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비 내린다 했습니다.
대해리도 내렸습니다.
소사아저씨 한갓지다고 새벽차로 마을을 나가
읍내 장구경도 하고 목욕도 하고 하루나들이하셨답니다.
다시 나무 다루는 현장 첫날.
흐리다 비 떨어지기 시작하는 아침, 그리고 종일 잔잔히 내렸습니다.
흐린 아침을 조깅으로 열었지요.
물꼬에서 보내는 일상처럼 보내야 심리적 긴장이 덜할 것.
좌선하고, 뛰고, 끓인 곡기를 넣고,
작업복을 입고 신발끈을 죄여 매고 나섰습니다.
나무 다루는 현장의 공장 1층과 2층 너른 공간에
열댓 일꾼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페인트조와 목공조들.
오늘은 그들 움직임이 많을 것이라
한 귀퉁이에서 조용조용 조금씩만 옴작거리며 일합니다.
숙소에 책상이 없어
앉은뱅이용으로 노란 컨테이너를 가져와 머리맡에 두고 책상으로 썼습니다.
마침 숙소 곁이 부엌이라 식탁을 쓸 때도 있지만
홀로 하는 작업을 하기엔 제 방만큼이기야 할까요.
하여 오늘은 방에서 쓸 앉은뱅이용 책상 만들기.,
그렇다고 넉넉하게 큰 건 옮기는데 문제 있으니
필요시 쉬 이리저리 가볍게 들 수 있도록,
옛날 양반가 사랑방 서책상 정도이면 되리 하고
높이는 노트북을 올려놓고 자판을 두들길 수 있도록 270mm로.
그런데 이곳에서의 작업은, 우선 생각한 치수가 있긴 하지만
현장에서 남은 조각나무를 보며 거기 맞춰서 합니다.
조각 하나 버릴 게 하나도 없는 나무 아니더이까.
조각나무가 어디 있냐 말입니다, 다 이어 붙이면 될 일.
참, 앉은뱅이 책상의 모델은 한 휴게소의 직원용 벤치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모르지야 않았으되
보는 게 또 공부라는 진리를 요새 아주 절실히 느끼노니.
현장 사람들과 회식을 하고 늦게야 숙소로 들어오는데,
오랫동안 홈스쿨링을 했던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전화.
고교는 제도학교로 들어갔는데 너무나 힘들어하니 어째야 하나,
학교를 꼭 다녀야한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빈둥빈둥하는 홈스쿨링의 한 병폐를 감당도 못하겠고,
저 아이 성격에 제도를 벗어나서 제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걱정들을 안고 계셨지요.
“뭔가 시작했으면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은 다 지나가 봐야지,
연애를 해도 적어도 그 계절만치는 사람을 만나봐야지요.”
그리 해보기로 합니다.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
제 외할머니 말씀을 인용하며
저마다 삶의 무게를 가졌노라 제 삶도 그리 지고 걸어가는
이 산골 홈스쿨러 저희 집 아이도 겹쳐집디다려.
한 공사업자로부터 연락.
달골 뒤란 공사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예, 이적지.
일단 임시조치를 한 상태에서
장마 지나고 가을께 큰비 오기 전 논의를 좀 해보자던 한 업자였지요.
마침 읍내 한 초등학교의 뒤란 한 벽에 녹생토를 입히게 되어
이 시기에 공사를 같이 진행하면 어떻겠냐는.
일단 견적을 받아보자 하였습니다.
“제가 출장 중이라...”
“현장에 가서 다시 돌아보고 견적 뽑아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달골 뒤란의 완벽한 해결책은 현재로선 없다,
물론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거대한 석축을 쌓아낸다면 또 모를까,
그런데 그만큼 또 산을 깎아내야 하니 아무래도 말이 안 되는,
하여 지켜보며 방법을 찾아가기로 결정하고
지나간 여름 임시변통을 해둔 상태.
두고 봅시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