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0.물날. 맑음

조회 수 750 추천 수 0 2013.12.03 10:53:18

 

사흘 내리 눈싸라기 앞세우며 수선스럽던 바람이

오늘은 잠잠합니다.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일 거라더니

아침 수월합디다.

멀리 안부를 여쭈노니

깊은 가을 안녕들 하시온지.

 

아이들과 아침수행.

위탁교육 기간입니다.

오늘은 티벳대배도 동반합니다.

오전엔 읍내 도서관에 있었습니다.

책은 우리 안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던

카프카의 말을 서가를 걸으며 떠올립니다.

책을 고르고 가져와 읽고 얘기 나누고...

오후엔 청소명상.

복도가 오늘의 공부거리; 후미진 곳을 보는 법.

저녁밥상을 준비하기 전 윗마을까지 걷기로 하였으나,

몸을 움직인 아이는 졸음에 겨워했지요.

불가에 자리를 펴고 더운물을 넣은 주머니를 안겨 잠시 눈 붙이게 합니다.

소사아저씨는 사택 간장집과 고추장집 창문에 비닐을 치고

목공실에도 비닐을 정리하셨네요.

 

점심, 작은 소란이 있었습니다.

어딜 가나 사흘이 고비데요.

여기 오는 이들도 그렇지 않을지.

아이들도 그런가봅디다.

떼를 쓰면 감당을 할 수 없다는 엄마,

날마다 눈을 뜨며 하루의 시작이 두렵다는 엄마,

그런데 아이들은 얼마나 신통방통, 혹은 영악한지요.

떼를 써도 안 된다는 걸 명확하게 알면

두말 할 일이 없습니다.

하고픈 걸 참는 마음을 길러도 보자는 이곳에서

위탁을 와 있던 아이는 제 전화를 챙겨 집에 간다고 길을 나섰습니다.

컴퓨터 게임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명분은 엄마가 보고 싶다고.

소리 치고, 울고,

하지만 뭐 별 수 없이 돌아왔지요, 와야지요.

그리고는 큰 실수했노라 반성한답니다.

아, 저 이쁜 아이들을 어이 하나, 저 멀쩡한 아이들을.

누가 저 아이에게 장애라는 딱지를 붙였는지.

 

밤, 아이들과 영화 잠깐 보며 뒹굴다

엊그제 풀을 쒀와 붙이던 햇발동 다용도실 벽지를

모자란 풀 다시 쑤어와 이어 붙입니다.

때로 확 떼고 다 다시 붙이는 게 쉽지요.

글도 그렇지 않던가요, 다시 쓰고 말지, 교정이 더 어려운.

일은 자꾸 커지고,

그러니 또 풀이 모자라고 마네요.

내일은 정말 마무리가 되겄습니다, 그것도 가봐야 알 것이지만.

 

아이 외할머니가 낼 오신다는 전갈입니다.

이곳의 장살림을 당신이 더 많이 걱정하시지요.

김장할 때 한 번에 하자면 일이니

한 주 먼저 올라와 메주를 같이 쑤겠다고 오신다는데,

올해는 메주콩 20kg.

고추장도 이참에 담그야겄습니다.

거기 넣으려 메주 한 덩이 말려둔 게 있지요.

아직 남은 고추장이 작은 항아리에 하나 있으니

5kg만 해도 한해 잘 먹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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