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1.물날. 맑음

조회 수 821 추천 수 0 2014.01.06 21:28:13

 

건승들 하시라,

운동장에서 하늘 향해 크게 절하며 새해 아침을 맞았습니다.

 

만두를 빚습니다.

만두피를 밀고 묵은지에 두부에 당면에 없는 숙주 대신 콩나물 머리 떼어

양념하여 소를 만들고,

가래떡 없어 얼려두었던 절편을 잘라 떡만두국을 끓여내지요.

새해맞이 케잌도 잘랐습니다,

한해 부디 마음 좋으라 하고.

 

윤지와 연규는 옷방을 정리합니다.

철이 바뀌면 내려오는 상자가 있고 반대로 장롱 위로 올라가는 상자가 있지요.

아이들이 쓰는 동안 뒤섞인 것들 분류하여

계자에서 쓰기 좋게 자리를 만듭니다.

류옥하다는 교무행정 일을 돕고.

그리고 오늘도 아이들이 차린 저녁밥상에 앉았습니다.

올해 대학을 들어가는 연규와 윤지가 한주를 이곳에서 보내며

계자 준비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낡아진 살림들이 예제 손볼 것 많아

전동드릴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여러 날인데,

아이들이 저리 일상과 계자준비를 해주고 있으니 마음 든든하고,

나아가 일이 돼 가는 거지요.

설거지는 류옥하다가 하고.

용습니다.

참말 잘들 컸습니다.

어른들 있어도 밥상차림은 쉽지 않은데,

저들이 이리 밥을 차려냅니다.

 

잠시 비상사태.

어두워오는데 고추장집 보일러 급수통이 펄펄 끓어 넘쳐 비워지고

순환기 모터가 움직이지 않고...

까닭인즉 청계에서 일할 때 전선을 잘못 건드려 망가진 간장집 스위치를

류옥하다가 고치느라 차단기를 내렸더란 말이지요.

그런데 스위치가 마땅치 않아 사오기로 했는데,

누가 만지기라도 하겠다 싶어 차단기를 내리 내려두었는데,

그게 고추장집 뒤란 보일러실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

전기가 끊어진 두 시간 동안 순환기에 의지해 돌던 보일러가

그만 멈춰버렸지요.

급히 사람을 부르나 그 밤에 이 산골을 누가 오나요.

얼지 않고 약하게 불을 조절하고,

급수통에 물이야 당연히 채우고,

그리고 잠을 된장집에 몰려 자기로.

“돼요, 돼요!”

다행히 두어 시간 뒤 다시 가동된다는 전갈.

하이고, 고맙습니다!

 

한 이웃의 막힌 혈을 풀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을 맞으며 사는 산골 삶이라,

또 스스로를 구하는 방식으로서도,

몸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해오는데

요새는 사혈의 한 갈래를 익히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피를 뽑거나 하는 건 아니고

그저 혈 자리를 잘 익혀 만지는 걸로.

 

“불심검문이야.”

아이들이 쓰고 있는 고추장집으로 한밤 건너갑니다.

밤마실이지요.

오래 함께 한 시간들만큼 들추는 지나간 추억이 얼마나 많던지요.

어찌나들 웃었던지...

미국연수를 떠나있는 기표샘을 많이도 그리워들 했습니다.

언젠가 멀쩡히 앞에서 밥 잘 먹다가 대뜸 한 새끼일꾼에게 그랬다지요.

“니는 문제가 뭔지 아나?”

“아니요.”

“거울 좀 보고 와라.”

“모르겠는데요...”

“니 얼굴이다.”

제대를 하고 막 왔던 여름 계자에선 대뜸 몇 해 만에 보는 새끼일꾼에게

앞뒤 없이 툭,

“니 쌍수 했나?”

쌍거풀 수술했느냔 말이라 합니다.

“아... 예...”

“잘했네.”

아, 그리운 우리 기표...

초등 3년에 와 군대까지 다녀온 스물댓 살 마디마디마다 물꼬랑 만나왔던 그는

계자에서 밤이면 불을 지키는 ‘불 샘’에다 훈육주임.

잘 있는가, 그대.

 

본관에 불을 끄고 학교 큰마당을 가로질러 가며 소사아저씨 그럽니다.

“봄바람이요.”

예, 밤바람이 차지만 꼭 살랑거리는 봄바람만 같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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