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퍽 푹합니다.

빠르게 녹는 운동장 눈이 안타깝기도 하지요.

아이들 오는데, 아이들 오는데...

‘2013학년도 겨울 계절자유학교-온몸 넉장거리 치는’

5박6일 일정을 시작합니다.

 

계자 시작하기 일주일 전부터 물꼬에서 지내 와서 그런지 미리모임 할 때까지만 해도, 영동역으로 갈 때까지만 해도 계자를 한다는 느낌보다는 일상을 지내는 느낌이었다. ... 학부모님들 앞에서 간단한 자기소개와 안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버스에 타서 아이들 인원을 확인하면서 책임감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인솔하고 있는 이 아이들 중 하나였던 내가 어느새 샘이 되어서 학부모님들께 안내를 하고! 아이들을 버스에 태워 물꼬까지 데리고 오다니! 2014년 스무 살이 되면서 내가 지나온 세월을 새삼 한번 더 실감하는 시간이었다.’(새끼일꾼 연규 형님의 하루 갈무리 글에서)

영동역으로 품앗이 희중샘과 선영샘, 그리고 새끼일꾼 연규 형님이 아이들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6개월에 만나는 아이들이지만, 자주 왔었던 아이들은 물론이고, 처음 오는 아이들도 마치 알고 지낸 것처럼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이런 시간이 좋았습니다.’(희중샘)

 

그동안 안에서는 다시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고,

쌓여있던 연탄재도 깨고,

아이들이 올 무렵 교문 밖 저만치까지 샘들이 마중을 나갔지요.

‘청계를 하고 연규랑 둘이 남아서 물꼬 살림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청소하고 정리하면서 챙겨보니깐 뭔가 걱정도 덜어지고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 같았다.’(새끼일꾼 윤지 형님)

손님을 기다리며 우리 동구 밖을 나와 서성인 적 언제이던가요.

아파트 벨 누르면 그제야 내다보는 지금.

목 길게 빼고 멀리 보며 이제나저제나 마을로 들어설 이를 기다리던 마음...

우리 삶의 인간스러움으로의 회귀,

어쩌면 물꼬의 시간이 그런 것이겠다는 생각이 듭디다.

‘정말 반갑고, 모두 아는 아이니까 완전 감격의 재회일 줄 알았지만 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오랜만의 어색함으로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진주샘)

‘네 번째 계자 만에 처음으로 익숙한 샘들과 익숙한 학생들과 계자를 시작하게 되었다.’(화목샘)

시간 그리 우리 위로 흐르고 있습니다.

 

아이들, 물꼬랑 오랜 인연들이 많습니다.

일곱 살 때부터 와서 7학년 겨울 마지막 계자 아이로 온 자누,

그러고 보니 언니랑 동행하지 않고 홀로 오기는 처음이네요.

밥바라지 엄마를 따라왔던 다섯 살 사내아이가 낼모레 4학년에 이르는 성빈,

초등 2학년부터 왔던 사촌 언니가 스무 살에 이르고

이제 그 사촌 동생들이 자라 계자에 올 나이에 이른 슬규와 은규,

아버지가 대학생 때 물꼬 품앗이샘이었고

그 댁 아이 자라 물꼬에 오기 세 차례의 겨울에 이르는 혜준,

이제 그 사촌 현제와 주은이가 함께 왔습니다.

현우 현곤 형아들이 다 거쳐 간 이곳에 네 살로 처음 빈들모임에 왔다

이제 초등학생이 되어 계자에 합류한 승욱,

유진이가 그 친구들 연재랑 지수와 같이 기차를 타고 왔고,

여러 해 오고 있는 건호 윤호 무량 현진 유란 선화 미희,

그리고 새 얼굴들 태우 선우 여원,

빈들모임에 오고 계자에도 걸음해본 영서 지혜 유빈.

밥바라지 엄마 따라 온 다섯 살 문성이도 아이들 틈에서 계자 아이 하나로 자리 잡고...

20여년 오랜 세월 광주의 한 보육원에서도 아이들이 걸음하고 있고,

경북 경남 전남 서울 경기 지역도 다양합니다.

사정이 생겨 오지 못한 두 아이를 빼고 스물여섯,

그리고 새끼일꾼 여덟을 포함해 어른들 스물둘,

마흔여덟이 엿새에 함께 하는 식구들이랍니다.

참, 연재는 언니 선재의 편지와 같이 왔지요.

한 대안학교의 7학년들이 이동학교로

몇 해 전 이곳에서 봄학기를 보낸 적 있습니다.

선재도 그 하나였더랬지요.

‘...저랑 제 동생이랑 물꼬에 대한 비슷한 추억을 갖을 수 있다는 게 좋네요...’

좋은 관계들과 의미 있는 장소를 공유하는 것, 기쁨이다마다요.

 

오늘의 ‘안내모임’은 안내부터가 아니라 아이들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질문이 결국 안내모임에서 알려주는 내용이랑 겹쳐지데요.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끊임없이 정리하고 책임지면서

‘스스로 하고’ ‘함께 하고’ ‘돌아보’는 계자일 것입니다.

 

‘큰모임’,

아이들에게 이곳에서 뭘 하고 싶냐 묻습니다.

열린교실도 해요, 보글보글도 해요, 낮잠도 자요, 도자기도 만들어요, 눈싸움도 눈썰매도 타요,

수다도 떨어요, 산에도 가요, 나들이도 가요, 장작놀이해요, 대동놀이요,

뜨개질도 해요, 얼음낚시도, 연극놀이, 한껏맘껏도 해요,...

“고기도 먹어요!”

“그러자, 집에 가서!”

팽이치기도 해요, 인간체스도요, 밤마실도 가요, 양초도 만들어요, 옷감물들이기,

거울도 만들어요, 수영도 해요,...

할 수 있는 건 다 할 테고 못하는 건 또 못할 테지요.

그리고 자기 좋아하는 거, 존경하는 사람, 바람, 자기 글집에 그런 것도 담아

그 그림들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두멧길’.

대해리 이야기에 등장하는 청둥오리들의 발에서 떨어진 얼음이 이룬 저수지도 가고,

마을 고샅길도 돌고 마을을 굽어보는 큰형님느티나무도 가고,

그리 산모롱이를 돌았더랍니다.

‘아이들과 마실을 나가는 야외활동이 있어서 좋았고,

나가니까 애들도 나도 대화든 행동이든 더 적극적이었던 것 같아서 좋다.’(은혜샘)

 

때마다 아이들이 설거지도 하지요.

저녁에 무량이는 싱크대로 오더니

안다고 바닥에서 작은 아이들을 위해 마련해둔 받침대를 꺼내 올라서서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밥상이 화려합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계자인데 밥바라지 엄마가 둘에다

워낙 마음을 내고들 계셔서

찬이 퍽 좋고 간도 아주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가난해서도 그러하지만 혹여 돈이 있더라도 그것으로 사람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기꺼이 낸 마음들이야말로 아이들을 살찌우는 것,

계자를 풍요롭게 하는 것.

 

‘한데모임,

풍성한 노래와 손말과 그리고 의논하고 생각을 나누는,

함께 살면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머리 맞대고 해결하는,

그리고 모두가 동의하는 길을 찾는 자리.

목소리나 들을 수 있을까 싶던 여원이와 슬규와 은규,

어찌나 야물게들 제 말을 하는지요.

내일 밥상머리공연 지원자를 신청 받을 때

여원이는 번쩍 손을 들기도 하였습니다.

성빈이도 리코더를 준비해왔지요.

“혹시나 몰라서요...”

 

‘대동놀이’.

뛰고 구르고 잡고,

이 겨울에 그 추운 곳에서 땀이 다 송글송글 맺혔습니다.

지난 청소년 계자에 왔던 원규샘이 고쳐놓은 송풍기가 제 기능도 하고.

 

하루재기를 끝낸 아이들이 샘들이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잠자리로 갑니다.

밥바라지 엄마랑 동행한 지혜와 유빈이는 엄마랑 자러 가겠다고 울다

아이들 방으로 갔지요.

언니니까 네가 유빈이 잘 챙겨줘야 한다는 말에

많이 동의하고 책임감도 느끼는 지혜,

연탄을 갈던 옆에 있다 집게에 손을 살짝 데인 곳을 치료받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집중되는 관심으로 마음이 풀어진 덕도 있었습니다.

 

‘샘들 하루재기’.

아이들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들여다보는 깊은 시간.

샘들이 아이들과 거의 1:1 상황이라

아이들 하나하나 챙기는 것이나 전체 준비하고 정리하는 데나

구멍 없이 준비되고 서로 역할을 잘 찾고 있습니다.

“건호(그저 귀엽기만 하던 그 우리 건호요)가 이제는 더 어린 아이들도 있는 상황에서

어리니까로 이해되는 시기를 지나 있는 나이,

그래서 샘들이 이제는 ‘한 소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냐 싶습니다.”

글집이나 노래집을 던지거나 친구들을 놀리는 계속된 행동에 대해

샘들이 대응을 의논하기도 하지요.

그렇게들 아이들에 대한 수위들을 조율하고.

연재 이름이 여러 사람 입에 올려졌습니다, 언니를 꼭 닮은.

좋은 품성의 아이가 우리를 얼마나 선선하게 하던지요.

같이 온 아이들이랑만 있으려 하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고도 했습니다.

샘들이 입을 모아 자누 칭찬도 하였네요.

밥상머리무대에며 흩어진 것들을 자연스레 정리하고 있더라지요.

묵묵히 제 자리를 잡은 사람이 주는 안정감과 평온함을 나눠준 아이였습니다.

그나저나 이 계자, 샘들이 성할까 모르겠네요.

아이들이 등에도 붙고 목도 타고 팔에도 매달리고...

 

아리샘,

“**가 큰모임에서 우리도 돈 내고 왔으니 재료를 달라는 말,

실리에 밝고 자기 주장에 거침이 없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라지만

모두가 앉은 자리 듣는 사람을 배려하는 말하기가 되지 않는 것이 좀 불편했습니다.

큰 아이들의 생각이나 말하기가 어린 애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더 신경이 쓰였어요.중 2면, 그리고 와봤던 아이라면,

어린 애들에게도 갖고 있는 생각이나 이곳에서 물건을 사용하는 태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아쉽더라구요.”

그런 씁쓸함이 있었는가 하면,

“태우, 때건지기 때 양껏 먹고 나서 ‘그런데 여기는 뭐가 이렇게 계속 나와요?’요 그러는데

없어지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아이들 먹는데 부족함 없이 아까워함 없이 내어주는 게

이 공간이 아이들에게 갖는 태도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습니다.”

‘많이 피곤하다. 그런데 항상 그렇듯이 참을만한 것이 참 신기하다. 그리고 나보다 어린 새끼일꾼 넷이나 있어 든든하다. 내가 학교를 다녀본 후 처음으로 오는 물꼬라 그런지 뭔가 우리 반 같기도 하고, 그래서 조용히 시켜야할 것만 같다. 1학년 9반에서 이제 벗어나는 마지막 통과의례를 하는 것 같다. 이번 계자를 통해 고등학생이라는 허물을 잠시나마 벗을 수있으면 좋겠다. ’(새끼일꾼 경이 형님)

‘커가는 아이들 앞에서 당당히 뿌듯해지도록

하던 일이 아닌지라 어렵지만 내일은 더 부지런히 움직이겠다’ 다짐하는 진주샘.

 

모든 공식 일정이 끝난 것이 자정도 훨씬 넘긴 시간인데

그 뒤에도 샘들의 움직임은 계속됩니다.

아이들 뒷간 똥통을 비우러 가고,

뒤란 보일러 아궁이에 불을 계속 지피러 가고...

 

계자가 끝나면 아주 오랫동안 그 계자를 상징하는 장면이 꼭 있습니다.

지난여름의 한 계자는 한 아이의 훼방에 대해

그 문제를 한 개인에 대한 자아비판이 아니라 모두 공유하고 해결하려 한

너무나 따뜻했던 자리가 잊히지 않았습니다.

이번 계자는 또 어떤 장면으로 오래도록 기억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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