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부터 기온 떨어집니다. 꽃샘추위 온다 했습니다.
단식 이레를 위해 감식 7일을 보냈고,
그리고 단식 여는 날.
물과 소금으로 이레가 흐를 것입니다.
멀리서도 개인 사정에 따라 며칠씩 단식수행에 동행.
앞서의 단식이 좀 힘들었습니다.
그저 명상수행하는 날들과 다르지 않게 해오던 단식을
요가계의 한 거장의 안내에 따라 조금 다른 방식을 도입했는데,
그게 사단이 났던 겁니다.
아주 죽음이었더랬지요.
다시 단식 소리 못하겠습디다.
하여 한 계절을 쉬었습니다.
그런 시간 있고 나니 처음으로 단식이 두려움으로 오기까지 합디다.
처음 단식을 해보던, 그리고 21일을 하고도 그저 그 비움이 좋더니만
한 번의 경험이 아주 쓰고 보니 살짝 겁이 일어나면서
어제쯤부터는 마치 단식을 시작이라도 했는 양 기운이 좀 없기까지.
그럴수록 몸이 처지도록 내버려두면 안 되지요,
부정적 감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몸도 그러하므로.
많이 먹고 있었습니다.
몸무게도 불었습니다.
그렇다고 단식이 살을 빼겠다는 불순한 의도는 아닙니다.
다만 먹는 것을 탐하는 그 욕심이 결국 다른 탐과도 동일한 선에 있다는 반성.
너무 많이 먹는구나, 생활이 방만하구나, 그런.
1식 3찬, 물꼬의 밥상 원칙이지만
우리들의 밥상은 늘 가짓수가 많습니다.
여러 가지를 상에 올리는 것을 좋아하진 않으나,
사실 싫어하는 데 더 가까울 것,
하지만 두루 다양한 이들이 드나들다 보니
뭐라도 입에 맞았으면 싶은 마음에 어느새 찬은 또 늘어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끼니’에서
성찬으로 즐거움과 누림으로 밥상이 변했다지만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대부분, 여전히, 배가 고프다 합니다.
우리가 고픈 것은 무엇일까요...
단식의 날들이 당연 성찰하는 시간이리 합니다.
경주의 한 절집에서 뒤란의 대나무를 잘랐습니다.
대나무 평상을 만들어보겠다 생각합니다.
언제 모양새가 갖춰질지는 모르겠으나
준비하다보면 되는 날이 있겠지요.
그러다 말면 또 말고.
‘음... 대나무와 대나무는 구멍을 뚫어 엮을 것인데,
그 연결끈은 무슨 재질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