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수행을 끝내고
옥수수와 호박 모종에 물을 주며 아침을 엽니다.
가마솥방도 책방과 교무실에 이어
드디어 난로를 치웠습니다.
겨울을 이제야 보낸 것 같은.
물꼬도 몇 해 포도농사를 지었습니다.
즙을 짜기도 했지요.
포도밭을 패 내고 더는 포도즙 짜는 기계를 쓰지 않았습니다.
2004년에 사서 두어 해 쓰고 창고를 지키고 있는 거지요.
수확량이 많지 않았던 두어 해는 밖에 의존하여 즙을 짰으니.
언제부터, 꺼내서 팔든지 주든지 해야지, 그렇게 해가 가고 또 갔습니다.
얼마 전 물꼬에 들린 면소재지 한 벗,
고물상 보내기 아깝다며 나서서 저가 팔아야겠다더니
드디어 임자 나섰다는 소식.
늘 적절한 때 적절한 손발들이 그리 살림을 살아주고 혹은 보태줍니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마루야마 겐지).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이성으로 생각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교양, 지성이다.”
바로 그 마루야마 겐지.
‘당신은 진정 홀로서기를 한 사람입니까. ...
부모에게 의존하고, 학력에 의존하고, 직장에 의존하고, 사회에 의존하고, 국가에 의존하고,
가정에 의존하고, 술에 의존하고, 경제적 번영의 시대에 의존하면서 이럭저럭 수십 년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홀로 설 기회를 그때마다 잃고, 그저 공부나 일을 하면서 겪은 혹독함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당신은 자신에서,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 또 도피해 온 것은 아닐까요. ...
그래서 직장이라는 후원자를 빼앗긴 당신은 자신의 판단만을 강요받는 진정한 어른의 처지로 내몰리자 그런 어린애 같은, 너무나 허술하기 짝이 없는 발상에 휘둘리고 만 것은 아닐까요.’(p17~18)
시골생활 47년째인 그는 목차에서부터 냉혹합니다.
평온하고 고요한 삶이 시골에 있으리라 환상을 품은 사람들에게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시골의 현실을 일깨우지요.
물꼬도 이른바 귀농인으로 분류되는 ‘외지 것’입니다.
1996년 가을부터 폐교가 된 학교를 썼으나 서울과 왔다갔다 하다
2001년 비로소 식구들이 아주 이사를 왔지요,
저야 그 해 네 살짜리 아이 손을 붙들고 한국을 떠나
일곱 개 나라 공동체를 돌아 2003년 여름에야 들어왔지만.
도시로 나간 아비의 자식이 이 마을에 산 적 조차 없어도,
그 자식은 이 마을 사람이어도
2001년부터만 따지더라도 벌써 십년도 한참 넘은 세월을 산 외지 것은
여전히 외지 것입니다,
아마도 한참을 더 살아도 그럴.
차례만 몇 훑어보아도 거개가 다 겪은 것들이지요.
엊그제도 겪었을.
어떻게든 되는 시골 생활은 없다
어딜 가든 삶은 따라온다
경치만 보다간 절벽으로 떨어진다
스스로를 속이지 마라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텃밭 가꾸기도 벅차다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
당신의 가난은 고립무원이다
고독은 시골에도 따라온다
고요해서 더 시끄럽다
다른 소리를 냈다간 왕따당한다
친해지지 말고 그냥 욕먹어라
윗사람이라면 껌뻑 죽는다
심심하던 차에 당신이 등장한 것이다
돌잔치에 빠지면 찍힌다
이주자들과만 어울리면 사달 난다
엎질러진 시골 생활은 되돌릴 수 없다
그렇습니다. 정말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텃밭 가꾸기도 벅차’고,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대목을 날마다 경험합니다,
그러면서, 누구 말마따나 하루에도 열두 번 암울하고
겨우 한 번이나 희망을 느끼는.
그래도 마지막 한 줄의 위로!
진정한 빛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만 빛납니다.
진정한 감동은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물꼬도 계속 이 산마을 산다는...
그리하여 물꼬가 계속 살아간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