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밭에선 잎이 오르고 있습니다...
고통 총량의 법칙.
고통 총량에는 변화가 없다, 양상만 달라진다는.
이 참담한 시간들이 꼭 그렇다 싶은.
아주 보잘 것 없는 호모 사피엔스 하나가
지구적인 규모의 대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음에도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점심에 무얼 먹을까 오늘은 무슨 일을 할까를 생각하면서
계속 자신들의 일에 몰두할 뿐.
그런 것이다.
사실 이 순간 우주 어디에서 이 우주를 구해냈을 지라도
우리는 그저 저녁 밥상을 걱정하는 것.
한 소설의 구절이 대략 이러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도 곡기를 넣는 게 또한 살아있음이니.
세월호를 타고 떠났던 이들...
서울에서 포항 대 서울 경기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보기로 약속했던 터.
조용히 경기만 하고 조용히 경기만을 보겠다지만
환호를 지를 수 없는 경기라니.
“우리 보러 가면 안 될 것 같지 않아?”
오래 기다렸고 어렵게들 약속을 잡았으나
결국 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마음 더 무거웠으리.
그렇게라도 이 참담한 시간을 ‘함께’ 건너야 한다는 생각.
건물이름을 지어 달라는 요청 하나.
무엇을 위한 것인지, 누가 쓸 것인지를 고려하며 한동안 매달려 매듭짓고.
거기에는 그 건물이 쓰일 시간들도 짚은.
‘물꼬’의 이름자를 생각했습니다.
물꼬...
원고 하나 퇴고 하고,
툭 하면 불려와 물꼬에 손발 보태는 이웃이
새 건물 하나 짓기에 거기 붙일 액자를 위해
수 하나 놓으려고 도안 그리고 수틀에 끼우고,
그렇게 하루해가 졌습니다.
무기력한 날들입니다.
온 국민이 그러할.
그래도 뭔가 해야 할.
죽지 않고 살아나갈 것이므로.
생각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
그리하여 뭔가 해야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