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하늘.
하늘에는 굉장한 격랑이 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천둥번개가 치고 폭풍 몰아치는 게 아니라
그저 구름들이 갖가지로 넌출대며 서쪽하늘로 기운 해를 둘러싸고
저편으로 무지개를 만들어내고 있었지요.
경사(慶事) 아니겠는지.
11월 한 달 네팔행.
갈 준비란 건 그저 일상 정리.
부엌곳간으로 감자와 양파를 들여놓고,
돌아올 즈음이면 바깥에서 얼 것이니,
장독대도 갔지요.
간장 된장 고추장을 꺼내 채워두고
뚜껑 연 김에 볕도 바래고 바람도 넣고 곰팡이 보이는 자리도 덜어내고.
그리고 행주질을 하고.
멀리 계신 은사님,
10월 중순에 안나푸르나로 가는 소롱라에서 있었던 눈사태를 곱씹으며
괜찮을까 걱정하시는 전화 주셨습니다.
“여비는 좀 안 보태줘도 되나?”
“에이, 아니요, 아니요. 필요하면 말씀 드릴 게요.”
“그래, 언제든 필요하면 말해라.”
이적지 선생님 그늘...
오늘은 바깥에서 무려 여섯 일정이 줄을 서 있습니다.
차모임부터 강의와 몸수련과 물날 수행모임과 상담과
그리고 잠깐 사람을 만나는 일까지.
오늘 차는 민북청차 다섯을 다 달여내기.
대홍포 백계관 철나한 수금귀 그리고 반천요,
차의 향연이었군요.
한의원에 들러 벼락치기 침도 맞았네요,
기운 척추가 좀 낫겠지 하고,
큰 산 오르니.
늦은 밤 10학년 아이 상담.
슬픔이 온 몸 가득 차 있는 아이.
무엇이 거기 들어갈 수 있겠는지.
사람들은 그 아이가 가진 것이 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화를 이루는 바탕은 슬픔입디다.
아이는 눈 아니어도 온 몸에 물기 머금고 있었지요.
차서 넘치지 못하고 온 몸을 채우고 있는.
12월 3일 2차 상담 날을 받아놓습니다.
1차 상담은 그를 돌보는 보호자와 했었고,
3차 상담은 안나푸르나를 다녀와 하는 걸로.
위탁교육이든 방문상담이든 내담상담이든 3차 상담 뒤 결정키로 합니다.
새로운 일에 대한 희망 하나.
여성 몇과 수행모임 결성하였습니다.
다른 직업, 다른 국적, 다른 나이대. 다른 조건, 다른 지역.
그러나 선한 결을 가진 이들.
같이 할 공부에 들떱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한국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안나푸르나에서 꼭 돌아와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