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23.불날. 맑음

조회 수 705 추천 수 0 2015.01.04 22:23:55


눈 녹아내리는.

날 풀린.

그래도 영하.


이제야 청소년계자 명단을 확인합니다.

물꼬는 청소년 계자 층이 두텁습니다.

초등들이야 아무래도 불편하니 올 기회 쉽지 않다가

이곳을 경험한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부지런히들 다녀가지요.

자리가 넘쳐 번번이 수용을 다 못하는.

고마운 일입니다.

계자 다녀가라고는 아니 해도 청소년 계자는 보내 주십사 전화를 넣기도 합니다.

물꼬에서 나누는 이야기의 질감을 흠뻑 받아들이고

격랑이 이는 청소년기를 지나는 힘을 잘 길러가는 듯.

한 학기를 열심히 살고 여름과 겨울 와서 지난 학기를 점검하는 시간도 되는.

심지어 성적관리까지 하는 계기가 되는.

물꼬로서도 공을 많이 들이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물꼬는 정말 만나봐야 알아요!”

아이들의 말대로.

그래요, 만나야 알지요.

사람끼리도 서로 그렇지 않겠는지.

하기야 어디 사람만 그럴까요.


‘노인들에게 멋진 것은

난로와 부르고뉴 산(産) 적포도주,

그리고 마지막에 편안한 죽음

그러나 멋 훗날, 아직 오늘은 말고!’

어제 통화하던 벗으로부터 헤세의 글 한 줄이 닿았습니다.

간밤, 수술을 앞둔 어머니 병실을 뒤로 한밤에 돌아와

마음이 수선스런 종일이었지요.



늙어간다는 것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모든 겉치레들

나도 덩달아 좋아했던 것들

곱슬머리, 넥타이, 투구와 칼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자


그러나 나 이제야 분명히 알겠다

나 늙은 소년이 된 지금에야

그런 것들을 소유하지 않는 것

그런 노력이 얼마나 현명한 건지

나 이제야 분명히 알겠다


리본과 곱슬머리, 그리고

모든 매력이 금방 사라지듯이

그밖에 내가 얻은 것들,

지혜 미덕 따뜻한 양말

아, 이 모든 것도 곧 사라지리라


그러면 지상은 추워지겠지

늙은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난로와 부르고뉴산 적포도주,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을 편안하게 맞는 것

그러나 오늘 당장이 아니라 나중에



막힌 혈관을 찾고 뚫은 장시간의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 소식이 닿았습니다.

어머니는 지상에 남으셨고,

자식들은 다시 우리 존재가 어떻게 이 땅에 이르렀는가,

그리고 무엇으로 우리가 사는가를 되짚는 시간이 됩니다.

참 사람살이가...

우리는 우리의 부모를 끊임없이 배신하고,

우리는 우리의 자식들로부터 배신을 당하며 한 생애를 건너가겠지요,

효자도 많습디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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