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리던 눈발을 저녁부터 접어올린 안개는

나무를 잡아먹고 길을 잡아먹고 도시도 잡아먹었다.

입춘.

그예 봄 오네.

올해는 입춘첩 없는 입춘일세.

입춘첩 붙이는 게 굿 한 번 하는 것보다 낫다는데.

해마다 아이가 써서 붙여오던 일,

제도학교를 가고 나니 그리 바쁘네.


사람의 일이라...

봉사활동인증 문제로 해당 기관들과 종일 전화가 오간다; 중앙기관과 하급실무기관.

요즘엔 봉사활동확인서도 인증기관절차를 필요로 한다.

관할기관에 등록을 하고 그곳에서 인증서를 받는 것만 봉사활동으로 간주한다는 것.

여기 봉사활동을 하러 오는 새끼일꾼들 가운데도 확인서를 원할 때가 있다.

그런데 어떤 학교에서는 그 확인서를 인정하고

또 어떤 학교에서는 원칙을 내세우며 안 된다고 한다.

사진 같은 증빙자료도, 활동한 기관에서의 증명서류도 다 소용이 없다.

봉사활동인증기관으로 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이름뿐인 봉사들과 달리

이 산골 이 불편한 곳에서 애쓰는 우리 아이들, 어른들에게

물꼬에서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거 하나라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기관 등록을 위한 절차를 밟기로 한 것.

그런데, 기관으로 인증하는 문제가 쉽지가 않다.

그 첫째가 학교라는 이름 때문인데,

말하자면 아이들이 배우러 오는 곳이지 봉사기관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

그간 여러 대안학교들에서 인증 절차를 밟았으나 되지 않았던 것도 같은 까닭이었다고.

긴 설득의 과정이 있었다.

사람의 일 아니더냐,

중요한 건 정말 봉사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니겠느냐,

아이들이 와서 어떤 활동을 하고 얼마나 깊이 배우는가를 어떤 강연보다 열심히 말한다.

어느 순간 먹먹해졌다, 이 모진 공간에서 고생한 사람들이 떠올라,

그들이 무엇이 있어 이곳에 손발을 보태는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보상조차 이리 길이 먼가.

마침내, 중앙본부와 지역본부간의 조율을 마지막으로 결국 인증을 해주기로,

인증절차를 위한 과정이 서류에서부터 아직 남아 있지만.

그 차오르는 감정으로 있었던 침묵이 결국 그들을 설득하게 해주었는지도.


사람의 일이란 게 참...

고백이다, 나 못났소 하는.

수행모임 하나에 합류하였는데, 한 사람이 여럿을 불편케 하고 있다.

그런 사람 있다, 약한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타인들이 민망해할 정도로 얼마나 막 대하는지.

한의사인 그는 환자들과도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했다.

이십 년을 넘게 수행을 해왔고, 아주 똑똑하다는 사람.

그런데 오랜 공부가 다 무엇이고, 똑똑함이 다 무어란 말인가.

공부했다는 것은 너그러움을 키우는 것,

공부의 끝은 결국 사랑일 것이라.

그런데, 나 역시 공부한 사람이라면 그런 그를 받아들일 수 있으련만...

그의 문제가 꼭 어찌 그의 일이기만 하겠는가...

세상의 평화에, 관계의 평화에 기여하고자 하나 공부가 멀고 멀다.

그를 안아내는 일이 내 공부이겠구나 한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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