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도)대배도 해야 해요?”
“그럼, 우리 둘만 하랴? 의리가 있지...”
그렇게 서인샘 연규샘까지 해건지기에 동행한 아침.
그대들은 자신을 위해 기도하라, 나는 그대들을 위해 할지니.
내 생이 무슨 복이 있어 이리 타인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니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일지라.
낮1시까지 자던 11학년 아이는 그렇게 아침을 9시에 열었다.
민주지산.
아이들과 겨울마다 여러 차례 산에 들어도,
여름이면 민주지산에 몇 차례 들어도,
이즈음에 민주지산 오르기는 또 처음이다,
민주지산 아래 깃든 게 1996년 가을,
아주 들어와 산 걸로 쳐도 십 수 년이 지났는데.
들머리부터 꽝꽝 언 눈길.
아이젠도 없이 미끌대며 오르기 시작.
그런 길이라면 내려오기가 더 힘든.
유쾌한 산길이었다.
겨울산은,
언 계곡 아래 돌돌거리는 물소리가 때로 새소리처럼 지저귀었고,
녹아 흐르는 곳 휘도는 물은 손대면 따뜻하기라도 할 것 같은 온천마냥 김오르겠더라.
얕은 천은 얼어 물이 흘렀던 때 있었던가 싶게 두텁게 얼었고.
우리는 정상은 아니었어도 바위 하나에 깃발을 꽂았노니.
내려오는 길은 바람이 사나웠다.
날도 흐려가고.
아이들과 산을 내려와 목을 축이기도 하고 하산주를 마시기도 하는 가게에서
모여 앉아 곡기를 좀 채우고 도란거렸다.
사다리도 탔더랬네.
낮 4시, 물꼬에 들어서자마자 바느질을 위해 조각천을 자르는 동안
연규샘은 떡꼬치를 만들어 간식으로 냈다.
저녁버스를 타고 샘들이 돌아갔고,
11학년 아이랑 그림명상을 하고 날적이를 쓰고,
아이는 밤 9시부터 11시까지 쓴 전화기를 반납하고 잠자리로 갔다.
전화기를 놓는 일, 그에게 그 일이야말로 이곳에서 가장 어려운 게 아닐는지.
위탁교육 사흘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