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아침,

원규샘이 왔다.

벌써 몇 해의 인연이다.

주욱샘이 충남대 교수로 자리를 잡고 젤 크게 맺어준 인연이 그이다.

동행하기로 했던 선배가 함께하지 못하고 홀로 왔다.

오는 길이 멀었다.

입춘을 앞두고부터 오리라 별렀고 여러 차례 소식 오갔다.

겨울이면 모진 산골살이가 어설퍼서

누가 오겠다하면 꽃 피는 봄날에나 다녀가시라 한다.

겨울에는 집약적으로 지내는 게 추위도 덜하고 에너지도 아끼는 일이라

70년대 지어난 작고 낡은 세 채의 사택에서 겨울을 나고

2월 마지막 주 빈들모임이나 되어야 달골에 올라가지.

그러고 보면 원규샘은 우리 식구이려니 하는 사람인 갑다,

이 겨울 사택에 그의 이부자리를 살피며 든 생각.

그나저나 닭 좀 잡으라 해야지 않나 그랬네.

사위 같은 그일세, 하하.


올 때마다 호되게 일만 하다 갔다.

여기는 그에게 그런 곳이었다, 도와 주어야 할.

게다 차에 꼭 빈한 이곳 살림을 살펴 제 먹을거리를 넘치게 실어왔다.

새학년도 시작하기 전 마음도 가다듬고

이곳의 새학년도도 챙겨주겠다 온 걸음.

뭘 해도 좋고 뭘 안 해도 좋겠다.

늘 여럿과 와서 일손을 보탠다고 바빴던 그다.

푹 쉬다 가면 좋겠네.

하지만, 그런데도 일일세.

창문에, 이제야, 이제라도, 뽁뽁이(?)를 붙였다.

내내 모아뒀던 것들도 있고, 기락샘이 이사하며 썼던 것들도 여기에 실려왔다.

복도 북쪽 창에 다 붙였네.

정말 온도가 다른 것만 같은.


해가 지는 대해리에서 모두 모여 원규샘 사온 곡차를 참으로 마신다.

상촌 막걸리가 제법 진하지.

불콰해진 얼굴들.

“아랫목에들 좀 뒹굴다 와요.”

살포시 늦은 낮잠들을 자고 나와 저녁 밥상에 앉었네.

그 사이 옷을 하나 짓기 시작했다, 조각천들을 모아.

계통 없고 그리 멋도 없으나

이어놓으면 또 그 맛이 있다.

얼마 전 저승길에 나선 팔순 노모 입고가시라 지었던 옷처럼

그리 조끼 하나 또 만들어볼까 하고는.


이튿날 비.

언제 예서 그래 보겠냐고, 늦게까지 뜨끈한 아랫목에서 뒹굴어라 했지만

원규샘은 일찍부터 소사아저씨 일을 거들고 있었다.

우물가에서 연탄 깨는 소리가 한참을 났다.

그리고 모아 놓은 빈병들을 끌어내 면소재지 마트에 내고

소사아저씨 실어 이웃마을들을 휘돌고 왔네.

가까운 마을 할머니들 하나둘 세상 떠나고 말이 그리울 소사아저씨가 늘 마음에 걸리는데

그리 살펴주어 고맙다.


9학년 아이 하나가 고등학교를 가기 전 다녀갈 수 있느냐 연락했다.

여러 차례 소식 있었으나 날이 쉽지 않았다.

빈들모임이면 좋겠는데, 도저히 일정이 조절되지 않는다네.

그전에 와서 준비라도 도우면 안되겠냔다.

그러렴.

뭔가 마음결을 준비하고 새 길에 들어서고 싶은 모양이다.


원규샘이며 기락샘이며 보내고, 서울행.

자유학기제 관련 논의 하나가 내일 점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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