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건지기.

여느 빈들이라면

달골의 창고동에서 창으로 하늘과 마른 호두나무 가지가 기웃거리는 아침수행을 했을 것이다.

오늘은 학교에 내려와 본관의 수행방에서.

미리 복도에 난로 하나 켜두니 훈훈할세.

모둠방에만 난로를 둘 생각했지 복도를 그리 데울 생각은 않았더랬네, 두어 해 전까지.

하기야 좀([조옴]) 틈이 숭글숭글한 벽이어야 말이지.

허술한 건물이라 그런 노력이 헛짓이라 생각했을.

오래 사니 사는 법이 찾아지는 게지.

집이란 그렇게 ‘살면서’ 관리하고 지내는 법을 익히는 게 맞는.

티베트 대배로 백배를 하고 명상하고.

우리 아이들이 말하는 그 왜 화장지신한테 말이지.


날이 꾸물딱. 눈이라도 한바탕 오겠는. 기온도 싸늘한.

‘하기 1-서성이는 봄’은 김장김치를 꺼내 묵은지로 저장하기.

묻은 김치광에서 꺼내 짠 뒤 한 번씩 쓰기 좋게 작은 비닐에 넣는 과정.

둘러앉아 달동네 아줌마들 모인 부업반처럼.

변죽 좋은 금룡형, 농주라도 있어야 일이 된다나.

찢어먹을 김치 앞에 있으니 막걸리만 있으면 되겠는.

막걸리를 내가니 이제 파전이 있으면 딱 좋겠다는.

“점심은 어찌 먹을라고?”

두툼한 해물파전 내서 곡차를 한 순배 돌리는 위로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비 마냥 눈이 한두 점 훌훌.

말해 무엇 하랴. 일은 같이해야!

일정이 많지 않았던 2014학년도여 지난해 묵은지가 아직 냉장고를 꽤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또 들어가는.

달골 냉장고로 마지막 것들을 쟁였네.


하늘이 더 무거워졌다.

곧, 곧 쏟아져 내리겠다.

점심 밥상을 물리고 ‘하기 2-대문 미는 봄’은 바느질.

조각 천들을 이어 작은 주머니를 만들어보자.

그런 거 해본지, 아니 뭘 만들기 전 바늘귀에 실 넣어본지 오래라고들.

손이 꼼꼼한 금룡샘은, 귀퉁이가 너덜해진 이불귀에 천을 덧대주기로 한다.

다들 날이라도 새겠다.

그러는 사이 희중샘과 기락샘과 류옥하다가 들어왔다.


저녁 밥상, 2014학년도 마지막 빈들은 ‘길이길이 기억되리’ 다.

이웃마을 유기농가 광평에서 조정환샘과 민재도 와서 저녁을 나누었네.

그리고 ‘떼선’이 있었다.

두어 시간의 긴 밥상, 정녕 유쾌도 하였네.

떼선? 다녀간 이들에게 물어보시라.

연극을 내린 뒤에도 같이 공연을 했던 이들끼리

오랫동안 그 대사를 일상에서 뇌고 또 뇌며 자지러지듯,

계자가 끝나고도 한동안 우리들이 그 계자에 있듯 오고가는 계자 등장 낱말들처럼,

함께한 시간들은 그렇게 남는 것.

떼선 또한 그렇겠다.

앞으로도 물꼬의 상설 일정이 될 것만 같은.


그림명상.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을 통해 나를, 그리고 너를 읽었다.

그리고 실타래와 夜단법석,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고,

그것을 또 가만히 바라봐주고,

지리멸렬하게 일상을 나열하기도 하고,

또 그것을 끈기 있게 듣기도 하고,

그렇게 정성스럽게 보낸 시간들.

2015학년도 물꼬의 한해살이도 의논한다.

“어른계자도 하면 좋겠어요.”

2014학년도엔 5월에 있었다.

“계자에 이어서 해볼까?”

그러기로 한다.


밤, 그야말로 함박눈이 펑펑,

설중야행이었네.

달골 올랐다, 눈에 잠기는 산마을을 빠져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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