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13.쇠날. 비

조회 수 695 추천 수 0 2015.04.16 17:03:27


비가 내렸다. 오전에도 내리고 오후에도 내렸다.

소포가 왔다. 사탕이 왔다. 아직도 그런 게 온다.

세속적인 어떤 날들은 그렇게 뜻밖의 유쾌함이 되기도 한다.

잊히지 않아 고맙다.


주말이 시작되는 저녁, 거창의 신원스님과 당신의 벗 흥덕샘이 다녀가시다.

두 해전 겨울은 눈 날리는 날 쪼개준 신원스님의 장작으로 아이들 방을 데웠다.

시래기 국밥을 냈다.

맛나한다, 고맙다.

이 산골에서 어쩌면 가장 의미 있는 일은 이런 것일지도,

멕여주고 재워주는.

식당도 가게도 없는 곳이니. 다행히 펜션은 있다만.


와서 이 봄에 사택의 떨어진 문짝이며 학교 구석구석을 같이 작업하기로 했던 벗은

목 길게 빼고 기다렸지만 한 주가 지나도록 오지 못하고 있다.

그의 마음이 어떨지 싶어 전화도 넣지 못한.

그를 기다리는 일,

물꼬 일,

오랫동안 이 산마을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고 어미 일을 돕던 아이는 그랬다,

물꼬 일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그 끝없는 일에.

“그래도 공부는 하면 성과가 있는데...”

그래서 공부가 재밌단다.

뭐, 물꼬 일도 재밌다.

그래도 하나를 하면 한 거 아니더냐, 하나가 끝난 건 맞지 않더냔 말이다,

다음 일이 그 다음 일이 동시다발적이기도 하다만,

낡고 오래이어 표도 별 없다만.


지난주에 재단해둔 가구를 이제야 조립하고 있는데, 벨이 울렸다.

한참을 소식 없던 품앗이샘이다.

무슨 일들인가가 있고, 그 시간을 걸어가느라 소식 없는 거다.

다들 애쓰며 살아가고들 있는 거다.

하여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은

소식이 소식이 될 때 모든 상황이 정리되어 희소식일 수밖에 없겠고나.

고맙다. 잘 건너가주어.

여기도 안녕하다. 잘 건너가고 있다.

늘 하는 말이다만 형제고 자식이고 부모고 벗이고

아쉬운 소리만 아니 해도, 각자 잘 살아만 주어도 서로 돕는 것일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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