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17.불날. 모래바람

조회 수 723 추천 수 0 2015.04.19 02:01:48


“비와?”

비오는 것만 같이 꿉꿉한 날.

흐린 게 아니라 뿌연 하늘, 모래바람이다.

미세먼지란다.

그리고, 어제는 20도이더니 오늘은 22도까지 올랐다.


누군가 기형도의 '오래된 書籍'를 옮겨놓았는데,

제대로 옮기지 않아 시를 훼손하고 있었다.

책장에서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문학과 지성사)을 꺼내 24쪽을 펼쳤다.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 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書標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그의 시가, 아니, 모든 시들이

마침표와 쉼표가 제대로 옮겨지길 바라노니.

마침표와 쉼표와 띄어쓰기와 행갈이와 연갈이도 시란 걸 생각해주기를,

그런 민감함이 우리에게 있기를.

제발!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햇발’이라 부르던 후배가 있었다.

내 나이 스물셋의 봄, 그가 내게 이 시집을 사주었더라.

기억이 아니라 기록으로 알게 된.

책의 맨 뒷장에 그리 씌어 있었네.

아, 기록이여!

그이는 오랜 시간 시를 썼고 마흔 넘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우직하게 썼고, 등단을 했다.

“시집 몇 권 낼 만큼 쌓아놨겠다.”

“뭐... '쓰는' 게 중요하지.”

그가 말했다.

우리 곁에는 늘 스승이 넘치나, 발견하는 우리가 드무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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