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은 묻지 않는다
떠다니는 내 기억의 얼음장마다 부르지 않아도 뜨거운 안개가 쌓일 뿐이다
잠글 수 없는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
아아, 하나의 작은 죽음이 얼마나 큰 죽음들을 거느리는가
나리 나리 개나리
네가 두드릴 곳 하나 없는 거리
봄은 또다시 접혔던 꽃술을 펴고
찬물로 눈을 헹구며 유령처럼 나는 꽃을 꺾는다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 가운데 '나리 나리 개나리'의 끝 연)
26도까지 올라가더라.
5시에야 본 온도계였으니 한낮 더 올랐을 수도.
오후, 달골에 올랐다.
달골, 이 공간에 애정을 갖는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2004년 삽을 뜨고 2005년 상설 아이들이 기숙사로 입주했었다.
그러고도, 아이들이 머물 땐 잠을 자지만
아무래도 생활중심이 아래 학교이다 보니 붕 뜬 공간처럼,
치료를 목적으로 혹은 이런 저런 까닭으로 어른들이 머물거나,
특별히 상주하는 이가 있지 않으면서 그저 행사나 머무는 이들이 있을 때 한 번씩 쓰이는 공간으로,
몇 해 전부터 한겨울을 빼고는 기거를 하면서도 손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더구나 뒤란 공사며로 어수선도 했고,
하여 잠만 자는 고시원 같았던.
이제 아주 달골로 학교를 이전해야는 게 아닐까 논의가 일면서
비로소 공간이 자주 돌봐지고, 허니 또한 비로소 집같이 눈에 들고 있는.
어제 박은 달골 마당 꽃밭의 작은 나무 울타리,
망치질로 상처 난 부분들이며 벗겨진 도료를 다시 칠하다.
꽃밭이라지만, 겨우 두어 평, 돌투성이에다 풀 기세 여간하지 않은
거기 토끼풀은 남기고 쑥이며 질경이며 꽃마리며 꼭두서니며 개망초는 뽑아내다.
마당의 4월은 사람 손의 4월이어야 마당이다.
호두나무에 비료포대도 깐다.
지난 번 블루베리를 심을 적 배운 거다.
풀 무성한 밭, 마른풀들부터 걷었다, 밭의 끝에 놓인 컨테이너 가는 길만이라도.
밭 가장자리로 심은 호두나무 다섯,
나무 아래 포대를 깔고 다시 마사를 퍼다 덮어주다.
자기 세를 갖기 전엔 이리 도와주어야 하리.
가지 무성한 자두나무도 한껏 가지치기를 했다.
애들이 몇 개라도 온전한 걸 건져먹을 수 있자면 말이다.
차가 드나들며 뭉그러뜨린 마당을 가로지른 물길로 다시 좀 파주다.
저녁 8시에야, 더는 아무것도 뵈지 않아 장갑과 농기구들을 씻었네.
그리고 도서관 좇아가 책들을 빌려왔다.
뒤척임으로 오는 봄밤일진대 봄밤 없이 봄이 벌써 마당을 나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