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고 저녁 비 좀 뿌리다.


천리포수목원에서 보냈다.

새벽 5:30 미개방지구에 들어가 네 시간을 걸었다.

설립자 민병갈 선생이 어머니를 위해 지었던 목련집에서

외부인이 들어가서 차를 마신 건 처음이라 했다.

안내인이 차를 곁들여 찐 감자를 내주었다.

직원숙소로 쓰이던 곳도 들어가 보다.

지난 번 수목원 왔을 때도 네 잎 토끼풀을 땄는데, 숲에서 또 네 잎을 땄다.

그 많은 것들 가운데 그리 쑤욱 고개 내밀어 존재를 보이는 잎이라니.

울타리를 나오기 직전 가족들이 아이의 제안에 따라 ‘아침이슬’을 불렀다.

새벽 숲에서 식구들이 둘러서서 커다란 나무 아래서 부르는 노래라.


아침을 먹고 유류피해 역사전시관에 안내인이 부려주었다.

“아직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비밀스런 곳이에요.”

거기 태배전망대는 북쪽으로 점점이 흩어진 뱅이섬이 눈에 들어오고,

서쪽 바다 건너 신두리해안이 눈앞이었다.

태배전망대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흙길을 따라 내려서면

300m 남짓한 백사장의 안태배 해안.

계단으로 내려 신너루 해변을 걸었다. 정말 아무도 없었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아직도 모래성을 쌓으며 한참을 잘도 놀더라.

“야, 학교 너무 많이 다녀. 날마다 가는 학교인데 좀 빼도 돼.”

11학년 아이를 앞세워 어제 오후부터 이틀을 보내는 참.

의항리 마을의 항구 쪽으로 걸어 나와

거기 이웃집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한 중학교를 방문했다.

미리 교장선생님과 연락을 하고 뵙기로는 하였으나

출타하신다는 시간에 당도하지 못해 교무부장샘만 만났다.

수목원의 영향을 받아 뒤란에 작은 정원을 오랜 시간 만든 학교.

그야말로 천리포 작은 수목원이라 부를만한.

공립인데도 떠나면 부르고 떠나면 불러들여 사립학교처럼

한 교장선생님이 오랫동안 가꾼 정원이었다.

뒤란이 내려다보이는 곳 산에서 숱한 날을 고민하셨더란다.

나도 달골 콩밭에 그런 꿈을 꾸고 있노니.

다시 수목원 안으로 돌아와 어둡도록 거닐다 돌아왔네.


품앗이 소정샘의 글이 닿았다.

편지를 받고 이메일을 받고도 소식 한 줄이 어려웠더니.

6월 시 잔치에서 온다하고 못 왔다.

‘이제 몇 시간이면 닿을 거리에 사는데 무슨 구실이 그리 많은지

사는 자리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그리워만 하고 있다’는.

꿈을 꾸었다지, 함께 산책하는. 들뜨고 참 행복했단다.

그렇게 걷다가 헐벗은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났는데

그 아이들이 우리를 향해 돌을 던지자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나기를…"이라고 읊조리시면서

아이들을 향해 행복을 기원해주고 계셨어요.

그 순간, 제 눈에서 주체하지 못할 눈물이 쏟아졌어요.’

자신의 안위만 살피는 지금의 삶을 향한 따끔한 충고 같아서

며칠째 꿈을 곱씹으며 가만가만 생각에 잠겼더라지.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마음에 있으면 끝끝내 만나게 되지.

전엔 물 건너 먼 나라 가 있어 그러려니 했건만

이리 가까운 곳에서도 쉽지 않은 걸음이다.

아이도 훌쩍 컸으리. 뱃속 아이도 여러 달일 터.

할 말이 쌓이고 흩어지고, 그리움이 짙었다가 흩날리고,

그리 반복하며 시간이 흐른다.

마음이 멀지 않으니 머잖은 날 어제처럼 보리라.

우리 샘들 어디서고 다들 제 몫 거뜬히 할 테고,

언제고 달려오면 거기 물꼬 여전히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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