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지나는 태풍의 영향이리라,

새벽부터 덥더라. 일찍 잠이 깼다. 아이들이 올 것이기도 하여 그랬겠지.

아침에 면소재지 나가서 장을 보다.

늘 오고가는 사람 많은 곳이라 어째도 안에서 먹을 것이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아이들 맞이 반가운 마음에 뭐라도 사서 들여오고팠던.


아이들이 왔다; 2015 여름 청소년 계절자유학교(중고등).

놀고 일하고 배우고 사랑하고 연대하기!

마음의 근육을 기르고,

더하여, 계절자유학교에서 아이들 앞에 서기 위한 준비의 시간!


서울에서 광주에서 창원에서 서산에서 경기도에서, 그리고 영동에서들 모였다,

물꼬의 모임이 흔히 그렇듯.

계자 아이로 오다 청소년계자를 처음 시작하는 7학년 윤호,

물꼬에 첫걸음 하는 7학년 하늘, 9학년 유장이와 정민,

초등 2학년부터 몇 차례 왔다가 잊지 않고 있다 10학년이 되면서 온 지혜,

초등 5학년에 와서 9학년이 되기까지 내리 여름과 겨울을 이곳에서 보내는 태희,

초등 4학년부터 10학년이 되도록 계절을 띄우지 않고 오는 해찬,

초등 2년 때부터 물꼬 9년차가 되는 10학년 현지,

초등에서 중학 3년을 거쳐 10학년에 이른 가온,

그리고 이 산골에서 가정학교를 9년까지 하다가 이제 제도로 가 11학년이 된 류옥하다.

그렇게 열이 함께 한다. 참 좋은 규모.

가마솥방 의자수대로 스물넷을 할 때도 있었고,

지난여름 아일랜드 일정으로 개학 임박해서 하느라 여덟만 함께할 적도 있었는데,

대개 열다섯에서 스물이 참가했던 청계.

앞으로도 열이 딱 좋겠다.


점심 밥상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은 고래방에서 청소를 시작했다.

밥상을 물리고 ‘밑돌’과 ‘다리’.

같이 흐름을 짜고 일의 규모를 정하고 달골 올랐네.

일하고, 복분자를 따 먹고, 내려오며 계곡 들어가기로.

꽃밭에 풀을 매며 아이들을 하나씩 불러다 근황 묻기, 새 얼굴은 인사하기.

덤불에서 복분자를 따 먹으며 오디처럼 물든 입안.

내려오며 달골 계곡에 들었다, 물꼬 수영장.

초등 계자 시작하기 전 미리 가는 탐방이기도.

그런데, 돌아오는 아이들이 하나같이 축 처져 들어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다투기라도 했는가, 누가 다쳤을까...

세상에! 움직일 힘이 없을 만치 놀고 왔던 게다.

10년째 물꼬에서 물놀이를 했어도 오늘이 물꼬 최고의 물놀이였다는.

고달픈 10대들이지 않던가. 그리 흠뻑 놀이에 젖는 시간이 간절했으리.


저녁 설거지를 끝낸 아이들이 춤명상에 들었다.

열둘이 같이 했다. 이 역시 규모 좋더라.

몸으로 살아있는 생명들이 갖는 한 생애를 표현하며 우리 삶을 빗대보기도 하고

우리 하는 공부들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춤 속에서 풀어보기도 하고

한 그루 나무처럼 견고한 우리 삶을 꿈꾸기도 하고.


‘실타래’와 ‘夜단법석’.

숙제검사부터. 준비해온 글 또는 책, 이야기들을 푸는.

대개 열다섯이면 열다섯 권의 책을 읽게 되는.

오늘은 시가 많았다.

한 편의 시가 한 권의 책만큼의 질감들.

그리고 그 시가, 책이,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 생각을 확장케 하고

다시 그것은 얘기를 시작했던 이를 더 풍성하게 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정말 이기는 사람인가에 대해,

삶의 거룩한 안내자가 돼 준 사람,

편견과 차별에 대한 반성...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 삶을 조금 생각’도 해보고,

경제 관련 책으로 복잡하고 거대하게 돌아가는 우리 사는 세계를 이해도 하고.

세월호만 하더라도 단순한 침몰 사고더냐,

우리 삶을 조정하는 것들에 우리 존재가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결국 연대에 대한 진한 질감도 나누고.


‘지나간 한 학기’.

여름과 겨울에 모여 그 앞에 보낸 학기를 돌아보는 것도 청계에서 하는 중요한 작업.

아쉬움과 반성과 애쓴 자신에 대한, 혹은 서로에 대해 박수쳐주기.

누군들 삶이 가벼울까. 한국사회에서 한 존재로 살기는 더 유다른. 애썼노라!

‘내 마음의 돌덩이’를 꺼내고 그 돌덩이 살피고, 그리고 돌덩이 빠진 구멍 어루만지기.


“앗!”

“보셨어요?”

“응!”

야참을 먹고 나간 운동장에서 기다린 듯 떨어진,그것도 천천히, 유성.

아이들이 마당에 쏟아져 나와 근육통 생기리만치 을목 젖히고 별을 봤다.

류옥하다가 아이들과 평상을 옮겨 모다 드러도 누웠네, 자리를 바꿔가며도 누웠네.

여기 인연맺기 20년, 그런데도 그렇게 많은 별은 처음이었다.

별이 별에 별이었고, 별 별 별, 덕지덕지 붙인 딱지들처럼, 겹겹이 꽃잎처럼,

억겁의 세월이 그런 것이겠고나,

은하수를 중심으로 그토록 많은 별이라니.

이것만 봐도 좋다, 충분하다, 우리 여기 이리 모여.

청계를 위해 마련해준 하늘의 선물이었어라.


다른 청계는 날을 새듯이 깨어 있다가 좀 늦은 아침을 맞고는 하였는데,

이번 청계는 잠도 깊은 밤에는 자 있기로 한다.

대신 아침을 좀 서두르기로.


부엌에서는 서산 성남보육원의 국장님이신 수현샘이 같이 움직였다.

아이들을 데려다주면서 그리 손발 보탠다 했다.

부침개를 부치는 손이 여간 맵지 않더니

칼질이며 밥바라지 돕겠다 하실 만.

“옥샘 맘에 들었다면 정말 일 좀 하시는 양반이네.”

기락샘이 그랬다.

정말 수현샘이 그랬다.

“일하는 거 마음에 들어요.”

서로 그러며 고마워하고 좋아라 했네.

그리고 또래가 주는 즐거움이 있었다.

동류의 기관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사람들이라 또 동변상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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