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민주지산을 다녀왔습니다. 처음 가보는 것이었는데, 험난하기로 악명 높다고 들었는데 길이 평탄하지 않 고 자갈 등이 많아 오르기가 힘들었습니다. 보통 산행을 하면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데, 이 산은 계속 오르막길만 이어지는 것 같아서 체력소모가 심했던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말씀하시는데 포기할 법도 한 이 산행을 36도의 폭염 속에서도 끝까지 해내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정환샘의 하루 갈무리 글 가운데서)

폭염경보를 알리는 이장님의 새벽 방송이 있었습니다, 외출을 자제하라는.

우리 산에 가는데...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 불어도 갔던 산오름입니다.

아, 작년 폭우에는 길을 접었네요.

계자에서 산오름이 있은 뒤로 처음 있는 일이었지요.

오늘도 갈 데까지 가보기.

(다행히 민주지산은

 정상 얼마쯤을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늘이 함께하는 길입니다.

 해서 여름산행으로 그만인.)

그나저나 도대체 우리는 왜 굳이 산으로 가는 것일까요.

안에서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제쳐두고 기어코 산오름을 떠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간밤 늦게까지 밥바라지 엄마 상미샘과 연주샘이 김밥 속을 준비해주고 들어가셨습니다.

새벽 5시 밥솥에 불을 댕기고,

6시 샘들을 깨워 김밥을 쌌습니다.

7시 아이들을 깨우고, 일러준 대로 산오름 채비들을 했지요.

‘아이들이 스스로 준비를 잘해줘서 생각보다 빨리 준비할 수 있었다.’(예린샘)


다른 날보다 이른 아침을 먹고 7:40 마당에 모여 복장검사,

혹여 샌들을 신고 나서진 않았나, 고생할 옷을 입은 건 아닌가 살폈지요.

그리고 8시 학교를 떠나 마을계곡 들머리까지 걸어 내려가 8:30 물한리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것에도 지친 기색이 역력한 아이들(과 샘들)을 보니 등에 짊어진 짐의 무게처럼 무거운 책임감과 부담감이 느껴졌다.’(희정샘)


10분 뒤 물한계곡 주차장에 닿아 간단한 몸풀기를 하고 안내모임을 한 뒤

9시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지요.

맨 앞과 맨 뒤가 누구인지,

산에 사는 것들의 집을 방문할 때의 예의,

길을 잃었을 땐 어찌할지,

갈림길에서 다음 사람들과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지,

먼저 간 사람이 뒷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사람들을 만날 때는 또 어찌 해야는지,

화장실이 급할 땐 어떤 방법이 있는지, ...

찬찬히 짚고 시작한 산행이었습니다.


이 계곡 길은 언제나 바람을 달고 갔던 길입니다, 냉장고 속을 걷는 듯한.

그런데 웬일인가요. 바람 한 점 없고, 물줄기가 부르는 환희도 조용했습니다.

폭염, 그것도 경보가 울릴 만했군요.

오를수록 가뭄의 흔적들(어떤 식으로든 앞은 뒤에 남지요)이 잦았습니다.

지난 봄날은 초여름에 이르도록 지독하게 가물었던 날들이었지요.

산이라고 어디 달랐을까요.

산살림이 풍부하다는 북으로 난 골짝이지만

이리되면 버섯 보기도 쉽지 않을 가을이겠습니다.


주차장에서 잣나무 숲 바로 아래까지는 그저 ‘미리 걷는 길’,

시작점을 비로소 그쯤의 바위 자락에 두지요.

계곡을 건너는 1지점, 다시 작은 도랑 같은 물이 흐르는 1.5지점,

다시 작은 줄기 물이 있는 곳에서 2지점, 다음은 능선의 3지점,

끝으로 150미터를 오르면 정상에 이르는 쪽새길을 오를 것입니다.

그 길은 또 이야기가 함께하는 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첩첩이 산중 깃든 역사, 스며든 전설은 또 얼마나 많을라나요.

이 산에 왜 돌이 많은지, 이 산 꼭대기에 웬 잠자리는 또 그리 많은지도

다리를 쉬는 지점마다 이야기를 통해 듣게 될 것입니다.


들머리 구름다리를 지나자마자 준영이가 힘들다고 주저앉아버렸습니다,

혼자라도 다시 물꼬로 가겠다고.

새끼일꾼 현지 형님과 희중샘이 달래서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준영,

힘들다 힘들다 해놓고 내려갈 때는 신이 나서 통통 뛰어다녔더라는.

앞과 점점 벌어지는 해미 채성 준영이었습니다.

채성이는 손을 잡으면 무게를 다 실어버려

예린샘이 힘들어하며 빠지자 희중샘이 챙기기 시작했지요. 욕 좀 봤을 겝니다.


퍽 긴 길이었군요.

다람쥐도 거기, 뱀도 거기,

산에 사는 것들이 구경났다 기웃거리는 넘겨다보는 속에

개미떼처럼 줄지어 산을 올랐습니다.

작은 물길들을 요리조리 건너는 동안

세수도 하고 새벽의 토끼처럼 물도 마시고 찰방거리기도 하고 돌도 들추고

뭐라도 언제라도 놀이가 있는 아이들이지요.

1지점에서 나눠주었던 사탕은 제 요량대로 잘 배분하며 먹고 껍질만 남았지만

여벌옷과 물과 파이와 오이와 김밥을 든 샘들의 짐은 꼭대기까지 고스란히 갔군요.

껍질은 끝까지 손에 쥐여 밥을 먹는 표가 될 것입니다.


2지점에서 긴급한데모임.

여기서 멈출 것인가 정상까지 갈 것인가,

도전하는 이들만 갈 것인가, 모두 갈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가자!”

그러게요, 여기까지 왔는데.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지요,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열심히 기어오르는 뒷태와 달리 얼굴은 오만상인 율이입니다.

밥은 언제 먹냐 계속 투덜투덜거리는 와중에도 걷고 또 걷는.

해미 채성 동희 철우 아린이가 경철샘 희중샘과 동행하고 있군요.

‘혼자서도 잘 오르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시작부터 손을 잡고 그 손에 몸을 기대오는? 매달려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후자의 대표는 아린이로, 초반에 힘을 쓰게 한 장본인이다. 하지만 전자든 후자든 아이들이 손을 잡자며 먼저 내밀어오는 것은 기분 좋고 뿌듯한 일이다.’(희정샘)


여원이는 지혜 형님과 오릅니다.

드라마, 학교, 비밀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었지요.

어느 새 우진이도 같이 걷고 있네요.

석류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영상을 보고 내용과 느낀점도 들려주고

선생님이 누나 같아서 좋아요, 지혜 형님을 살갑게 챙겨도 주고

내일 집에 가서 가족들 보니까 좋은데 선생님들과 헤어지기가 섭섭하다 울먹이기도.

집 앞에 물꼬가 있으면 좋겠다고 한 우진이랍니다.

자유학교 물꼬가 출발은 도시, 그것도 서울에서 했더랬지요. 1989년의 일이었습니다.

할 수 있어, 그 말을 기대며 끝까지 올랐다는 우진.

‘평소 잘 말해본 적이 없었고 한데모임시간에나 다른 때 부모님이 보고 싶다고 우는 모습만 보고 여린 아이라고만 생각하고만 있었는데 대화를 나누다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따뜻하고 사려 깊고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경철샘)

그럼요, 우리는 얼마나 많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긍정성을 발현해내는 공간이 또 물꼬.

발톱이 빠지려고 해서 울던 우진에게 경철샘이 다가갔습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왜 샘들한테 말을 안했어?”

“저 때문에 모두가 늦어지면 안 되잖아요.”

어느새 또 발톱을 잊고

로또 당첨되면 3~5억 기부하고 친척, 가족들한테 모두 산다 그랬다나요.


일곱 살 민수 좀 보시어요.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요!”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태권도에서요.”

“그런데, 민수야,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났는데 또 넘어지면 어떻게 해?”

“일어나요!”

앞에 가며 넘어진 형아에게 민수가 소리칩니다.

“형, 일어나. 자기 힘을 믿어!”

“민수야,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

“제가 생각한 거예요.”

민수가 다림쥐처럼 올라 오히려 민수 꽁무니를 따라가는 꼴이 되었다던 희정샘.

‘나는 아이들에게 많이 놀랐다. 올라갈 때 짜증내고 안 올라간다고 할 줄 알았는데 어린 아이들이 더 잘 올라갔다. 거의 정상에 다다를 때쯤 지치고 힘들었는데 민수 혼자 앞장서서 가고 있던 게 대단했다. 안 힘드냐고 물어왔는데, 계속 안 힘들다 해서 민수의 다른 면을 봤다. 정상의 경치를 봤을 때는 성취감이 들었다.’(유장 형님)


저기, 이제 훤해지며 하늘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능선입니다.

도저히, 절대 오를 수 없겠다던 동희도 보입니다.

‘2지점에서 3지점으로 향하는 끝자락 즈음에 나도, 아이들도 지쳐 아무 말 없이 올라가고 있을 때 기표샘께서 계속 아이들을 다독이면서 올라가고 계시는 모습을 봐서 나도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었다.’(동휘샘)

샘의 몫, 어른의 몫이 그런 것일 터.

같이 가기, 북돋아주기, 믿어주기.


그리고 다시 마지막 힘을 내 150미터를 오르자

거기 잠자리 떼가 뒤덮인 정상이 잠수함처럼 솟아올랐습니다.

에베레스트 정상이기라도 한 것 마냥 펼쳐진 세상, 오른 자만이 볼 수 있는 풍경!

‘정상에 오른 순간 깨달았다. 나의 부족한 점은 다른 샘들이 채워주었고, 나도 어떠한 부분을 채워가며 계자라는 그림을 완성시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혜경샘)


오르막의 끝은 내리막의 시작이지요.

능선으로 내려와 점심을 먹었습니다.

지나는 어르신들이 한결같이 놀라며 물었지요,

어디서 왔는가, 오늘 같은 날에 정말 대단하다고.

어깨 으쓱해진 모두.

이제는 내려가야 할 때.

‘내려갈 때는 정환샘이 선두로, 그 뒤로 나와 동휘쌤이 내려갔는데, 아이들이 내려갈 때 더 힘들어했다. 이미 다리 힘이 풀렸고, 자꾸 미끄러져서 넘어지고 해서 아이들도 샘들도 지쳤다.’(유장 형님)

율이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대여섯 차례 넘어졌습니다.

무릎 둘레 살도 까지도 멍도 들고.

그런데도 아프다고 징징대지도 않고.

건호도 다쳤습니다. 그래도 입은 여전합니다. 하기야 입이 다친 건 아니니.

집으로 가는 길은 그런 겁니다.

지치고 힘든 삶에서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안이던지요.

아름 다운이 같은 큰 아이들이 율이 같은 어린 친구들을 돌보며 내려옵니다.

해미가 준영을 업어주기도 했네요.

함께 걷는 빛나는 시간들!

다치고 코피 나고 칭얼대기도 하고,

하지만 서로 응원하며 그 길을 어깨 겯고 내려왔습니다.

내려올 때 가는 곳곳마다 앞서 가 앉아서 바닥하고 장난치는 준영이,

계속 몇 분 더 가야 돼요, 하고 묻는 기하와 여원이.

채성 철수 선재 아린 찬우가 끄트머리에서 경철샘이랑 걷고 있습니다.

선두에서는 도경 무겸이,

이제 언제 만나요, 벌써 집에 가는데, 가기 싫어요, 일주일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들

재잘거리는 새처럼 지저귀었습니다, 그래요, 새들이었습니다.


우진이가 잠시 일행과 떨어졌습니다.

앞의 샘은 먼저가고, 뒤에 무리는 걸음이 늦은 아이들에 맞춰져 조금 늦어졌지요.

위험할 것도 길을 잃을 것도 없이 그저 길 따라 내려오면 되는 지점이지만

혼자라고 느꼈을 어느 한 순간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뒤에 연규샘네 무리를 만났을 때 우진이 그만 울어버렸네요.

미안합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런 걱정을 하게 두어.


‘산오름에서는 아이들과 나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등산로 초반에서는 준영이와 있었는데, 며칠간 보던 순둥이와는 영판 달랐다. 샘의 얘기도 안 듣고 딴짓하고 내가 부탁하는 모든 말에 거부를 하는 준영이가 너무 낯설어서 놀랐다. 준영이는 섬세하고 자상하고 감성적인 애로만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원하는 것을 확실히 주장하고 고집하는 아이란 걸 알게 되었다. 민수의 새로운 모습도 보았다. 보글보글이건 한데모임이건 웬만한 일정을 거부하던 민수가 산생은 적극적으로 행했다. 내가 내민 손도 잡지 않았고, 쉬어가자는 제안도 안 듣고 계속 걸었다. 아이가 하고 싶지 않은 걸 억지로 시키면 어떤 목표도 이룰 수 없다는 것과 아이들이 자신이 할 일을 생각하게; 하고 실천토록 돕는 것을 연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후자는 어찌 되었건 인간은 자주적으로 움직일 때 어떠한 목표를 이룬다고 여겼다. 산행은 고된 날씨, 장소에서 최소한의 음식으로 진행되기에 아이들의 숨은 속내를 보기 좋았던 경험이었다. 그리고 나도 산행이 고되었던 지라 나의 원초적 성격 까칠함이 드러났다. 좋은 속내를 보이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조금은 더 이성적이고 참을성 없던 내가 부끄러웠다.’(혜경샘)

깊숙이 보게 하는 기능, 그렇습니다. 산오름은 그런 겁니다.

학교를 중심으로, 기껏해야 계곡까지 가는 길, 그 안에서만 돌다가

더 너른 세계로 공간을 확대하여 관계 맺기.

넓혀진 세상, 넓혀진 관계, 새로운 모습들이 거기 있었지요.


17:20. 물한리에서 영동 읍내로 나오는 버스에 오르고

헐목에서 내려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2km.

어린 친구들은 학교 차량에 실려 들어오는 행운을 누렸네요.

그런데, 무량이가 아스팔트에 철퍼덕 주저앉아버렸습니다.

2주전에 열사병에 걸렸고 그 이후로 추운 곳으로 더운 곳으로 가면 몸이 적응을 못한다고.

혜경샘이 머리에 물도 부어주고 멕이고 , 쿨토시로 더위도 식혀주고.

하지만 계속 덜덜 떨어 학교에 닿자마자 뉘고 조처를 취하려는데,

웬걸요, 팥빙수가 약이었더랍니다.


학교로 들어와 깜짝 놀랐습니다.

윤기가 자르르 흘렀지요.

이 공간에 늘 살기에 압니다,

낡은 살림, 표도 안 나는, 하지만 (청소)안 하면 표 나는 살림,

압니다, 남았던 인영샘과 가온 형님의 애씀을.(아, 아리샘도 남아 오전 일을 같이 하고 오후에 연수를 떠남)

다른 계자에서라면 밥바라지엄마들의 몫을

이번엔 남겨진 두 샘이 꼼꼼하게 챙겼네요.

‘수강신청 때문에 산에 가지 못하고 가온이와 둘이 남아 아이들이 오는 시간까지 학교 전체를 쓸고 닦아 청소했습니다. 항상 청소하면서 느꼈던 거지만, 사람이 다 나간 자리를 다시 처음처럼 만들어 놓기 위해 공간을 뒤집어 엎어 청소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갑갑한 일인지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큰 해우소부터 교무실 끝까지 다 뒤집고 엎고 청소를 끝내니 전무후무한 느낌의 설레임과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인영샘)

얼마나 애들을 썼을까요.

청소 끝내자마자 빙수 준비를 했을 것이고 곧 아이들이 닥쳐 잠시 엉덩이 쉼도 못했을...


‘다녀와서 먹은 팥빙수는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이러한 소소한 즐거움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정환샘)

군대를 다녀오고 자주 이리 말하는 정환샘 보며,

이제 뭘 좀 아는구나, 농담을 하고는 한답니다.

그럼요, 그럼요, 생을 채우는 건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그런 소소한 기쁨들일 것.

물꼬에서, 계자에서 하는 우리들의 몸짓도 그런 것.


산을 내려와 졸도하듯 누운 샘들과 달리

아이들은 여전히 뛰어다닙니다.

그 속에 해미와 건호의 다툼도 있었네요.

누가 그런 말을 할까 싶더니 정말 싸우며 그런 표현을 하더군요, ‘엄마도 없는 게’라고.

얼마나 큰 얼음창이 될까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어미 없는, 애비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고 아이입니다.

엄마 없는 아이가 젤로 가련한 거지요.

다시 보지 못할 만치 멀리 간 사이에도 그런 말은 하지 않는 거란 걸 아는 나이는

얼마쯤이면 되는 걸까요...

우리 아이들에게 어미가 있는 나라, 그것이 복지국가에 거는 기대랍니다.


모두 팥빙수에 빠져있을 때 기표샘이 산오름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고,

태희 형님이 홀로 조용히 그 손을 돕고 있었습니다.

아차차, 샘들에게, 특히 품앗이로 처음 온 이들에게 놓친 안내입니다.

산을 내려와서도 몸을 펼쳐놓지 않고 계속 아이들 바라지를 할 것,

매고 온 가방을 팽개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가방 안을 비워 물건들을 제자리 보내고,

비우고 털고 씻는 곳에 쌓고,

아이들이 씻기 시작하면 도와 씻기고 비누칠하고 닦이는 샘들이 있고,

또 빠지는 애들이 없도록 챙기는 샘들이 있고,

더 이상 빨래통으로 빨래들이 가지 않도록 비닐봉지를 챙기기도 해야 하고...

그러고 보니 이번 계자 미리모임에서 빠뜨린 기본 정보들이 여럿입니다;

설거지 하는 법, 청소하는 법, 욕실 쓰는 법, 아이들 씻기는 법, 뒷간 청소하는 법...

일이 안 되었다면, 기꺼이 이 방학을 이곳에 손발 보태러 온 이들이 게을렀을 리 없으니

다만 알지 못했을 것. 

‘... 선생님들이 움직임들도 사실 더뎠다고 느껴집니다. 하는 사람들만 계속 비슷하게 움직이고 안 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잘 모르기에, 패턴이 습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정이 원활자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물꼬는 잘 굴러갔고, 아이들의 활기로 쌤들 또한 기분전환이 되고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인영샘)

그러게요, 일을 아는 사람이 힘든 법이지요, 아는 사람의 몫인 게지요.

“가장 큰 일은 일을 아는 그대가 했으이.”

새끼일꾼 때부터 일정과 일정 사이 빗자루를 손에 놓지 않던 인영입니다.

지금은 일을 잘 몰라도 보여준 그대로 보고 익힌 이들이 다음 손을 이어갈 것을 믿습니다.


한데모임에서 아이들에게 물었지요, 우리는 왜 산으로 갔는가.

왜 갔을까요?

열거하기를 관두기로.

아시리라, 우리 아이들도 알았듯.

우리 걸어가는 생 동안 행여 만나는 어려움 있거들랑 오늘처럼 그리 훌쩍 넘으시라.


마지막 대동놀이인 강강술래를 하기 전

160 계자를 축하하는 샘들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미리 챙겨놓지 못한 음악으로 조금 더뎌지긴 하였으나

기다리고 열광해준 아이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낫다마다요.

그리고 대잔치 강강술래.

‘강강수월래, 장작놀이는 소소함의 즐거움을 잘 느낄 수 있었는데 정말 그렇게 공들이지 않아도, 그냥 함께여서 즐거운, 그렇게 많은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그냥 좋았습니다.’(정환샘)

거창하게 하지 않아도 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고 놀 수 있는 소소함이 물꼬다운 자리였다고,

그 속에 행복하고, 그 행복에 기여하고 기뻤다 했습니다.


학교아저씨와 기표샘과 가온 형님이 준비한 장작놀이.

잘 마른 나무가 일으킨 불길은 하늘까지 닿겠습디다.

장관이데요.

우리의 갈무리 자리를 거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불을 중심으로 서서 한껏 노래를 부른 뒤

지난 시간들을 짚어보며 ‘나눔’이 있었습니다.

애썼다, 고맙다, 즐거웠다, 더 있고 싶다, 이렇게 금방 지날 줄 몰랐다,

이곳에서 어른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다고도 하고,

대안학교도 가보고 하였는데 제도학교랑 별반 다르지 않아 실망이 있었는데

물꼬는 정말 특별한, 다른 학교라 극찬도 하고, ...

태희 형님, 이 좋은 인연 꼭 다시 만나야겠다싶더라고.

‘이번 계자는 유난히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았다.

애들도 가기 싫어하는 것이 신기했고,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물꼬 사람들은 꼭 가족 같다.’(현지 형님)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하루 갈무리글에서 장작놀이 앞에 적은 연규샘의 글은 그러하였습니다.

그리고, 구운 감자로 어둠이 흩어지도록 인디언놀이.


夜단법석’의 밤이 기웁니다.

찬영이는 아파하고, 형 주영이는 마음 아파 시무룩합니다.

강강술래를 하러 고래방으로 들어서며 신명으로 떠들썩할 때

찬영이도 빙글빙글 혼자 돌다 그만 픽 쓰러졌습니다.

다리가 꼬였던 모양.

준영이가 먼저 보고 샘을 불렀습니다.

하여 인영샘 곁에서 누운 채로 강강술래는 눈으로 함께하였으나

장작놀이는 안타깝게도 같이 하지 못했네요.


아이들이 잠자리로 가고 자정이 다 돼 샘들의 하루재기가 이어졌습니다.

찬영이는 종아리 쪽을 V자 모양으로 아파합니다.

인영샘과 예린샘이 붙어 냉온찜질을 번갈아 했지요.

달린 것도 아니고 마루 바다가에서 빙글빙글 돌다 혼자 넘어진 것이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더러 아이들이 놀라서, 혹은 서러워서, 혹은 아파서, 혹은 엄살로도 울지요.

어느 쪽일까요?

일단 상태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피 철철 흘리는 상황은 아니어.


찬영이가 다시 울었습니다. 샘들 회의 중인 가마솥방으로 아이를 옮겼습니다.

병원을 가기로 하지요.

기표샘이 차를 가져오고 희정샘이 대기하는 동안 다시 잠이 든 찬영.

아이가 깨면 움직이기로 하고 일단 회의를 계속합니다.

다시 찬영이 깨고 새벽 1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다리에 금이 갔다지요.

반깁스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입원을 할 건 아니랍니다.

부모님께 내일 전화 드리기로 합니다.

옷방에다 자리를 잡고, 정환샘이 곁에서 돌보기로 하지요.

성실하고 따뜻하고 무게있는, 무엇보다 아이들을 잘 섬기는 정환샘이어, 다른 누가 아니라 그여서 다행하고 듬직했습니다.

벽 너머 교무실, 저도 있음을 알립니다.

“찬영아, 들리니?”

“예!”

급하면 부르라 합니다. 잠을 잘 잘 수 있으려나요.

5시가 다 돼 잠자리로 가며 기척을 살피니 다행히 찬영의 잠이 깊습니다.

내일은 내일의 아침이 오리니.


아이들이 오기 전, 그러니까 계자 시작 전 부모님들과 통화를 합니다.

부모가 없는 시간, 엄마 아빠로서 돌보겠다,

다치더라도 바로 연락 안할 수 있다,

멀리서 애만 타고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먼저 전문가에게 가겠다,

그때 연락해도 서운해 말아 달라,

미리 그리 말씀 드렸기는 하나 당사자 마음은 다를 터.

그렇다고 이 밤에 깨울 일은 아니겠습니다.

에고, 저 아이를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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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 계자 닷샛날, 2015. 8. 6.나무날. 맑음 / 민주지산(1,242m) 옥영경 2015-08-20 1042
3973 2012.11.14.물날. 눈 내리고 갠 옥영경 2012-11-23 1043
3972 2012. 5.14.달날. 비 옥영경 2012-05-23 1043
3971 2012. 2.11.흙날. 날 조금 푹해졌고나 옥영경 2012-02-21 1043
3970 2012. 1.24.불날. 맑으나 이틀째 꽁꽁 언 옥영경 2012-01-31 1043
3969 2011. 3.13.해날. 흐려지는 저녁 옥영경 2011-03-28 1043
3968 140 계자 나흗날, 2010. 8.11.물날. 오후 갬 옥영경 2010-08-22 1043
3967 2009. 7.18.흙날. 마른 비 옥영경 2009-07-3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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