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14.쇠날. 맑음

조회 수 703 추천 수 0 2015.09.03 02:42:10


'아름다운' 청년들, '빛나는' 새끼일꾼, 그 어떤 형용사보다 물꼬에선 깊은 낱말들이다.

물꼬에 손발 보태는, 그것도 제 밥값까지 들고들 와서,

이 거친 삶터로 뛰어 들어 온 몸으로 바닥을 훑고 떠난 이들의 계자 뒤끝이다.

가서 너부러질 만도 하건만 샘들의 평가글들이 속속 들어왔다.

그것도 그저 형식이 아니라 한 마디 한 마디 새겨둘 값진 음성으로.

계자에서 다리가 다쳤던 아이 일로도 여러 의견들을 모으고 보태고.

그들이 오늘 또 나를 가르치노니, 나를 일으켜 세우노니.


계자 기록 이틀치를 누리집에 올리니 하루해가 졌다.

어디 그 일만이 이 산골의 하루이겠는가.

부엌에도 가고 들에도 갔을 테지.

한밤 11학년 류옥하다가 왔다.

교무실 일을 시작했다; 160 계자 사진 정리, 그리고 올리기.

사진기가 고장 나,

뭐 여름이면 물놀이 가서 꼭 있는 일이다, 그게 아니라도 까닭이 어디 한두 개랴,

부랴부랴 손전화로 찍기도 한 것을 희중샘이 서둘러 모아 보내주었더랬다.

도중에 누리집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새벽 4시에야 끝낼 수 있었네.

하기야 자정이 넘어 시작했으니.

미안해하는 엄마, 괜찮다고 씩씩하게 위로하는 아이.

주말 하룻밤 잠깐 다녀가는 아이는, 그것도 한밤에 와서 새벽에 나가는,

그런데도 교무실일이며 집안일이며 일을 잡아두면 해주고 간다.

집에 오는 게 싫을 수도 있겠는.

"잘 가르쳐주어야 해. 그래야 이제 내가 하지."

"그냥 제가 올 때마다 할게요."

가르치는 게 더 귀찮을지도. 내가 웬만한 기계치여야 말이지.


글은 건조하고, 그 글을 쓰고 있는 삶은 질퍽하다.

글은 그저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메모 수준이고,

그 글을 쓰고 있는 현재는 젖어있다.

그것은 게으름인지, 담백한 척하기인지,

삶을 담지 못하는 글쓰기의 재능 없음인지, 아니면 감추기?

사람을 보내야했다,

뭐 헤어짐으로 해석되든 죽음으로 해석되든 먼 곳으로의 이주로 해석되든.

어쨌든 그랬다.

그런데 사람 하나 보내는 일이 쉽지 않네, 라고 글은 먼지 나듯 마른 문장으로 쓰고

삶에서는 배앓이를 혹독하게 했다.

부디 가는 이는 잘 가시고 남은 이는 잘 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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