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18.불날. 흐림

조회 수 1419 추천 수 0 2015.09.03 02:47:34


달골에 지으려던 토굴집 산지전용 허가를 받아놓고

2년이 무람없이, 사람 관계 아니고도 쓸 수 있는 말이라면, 흘렀다.

흙집을 짓는 어르신 한 분이 멀리서 와 지어주기로 했던 집인데,

여차저차 집이 되지 못했다,

바구니 속 감자 싹이 시들어가듯, 하던 한 시인의 시집 제목처럼

농기계집에서 기둥과 보가 될 나무들만 말라가고.

하지만 어쩌다 때가 올 수도 있잖겠는가.

연장신청을 결정했고, 건축사무소에서 해주었다.

다시 2년, 물꼬에 어떤 2년일 것인가.


충남대 사범대에서 교육연수 및 자원봉사활동을 왔다.

승용차 한 대로 올 수 있는 만큼만 오기.

그래서 다섯이 왔다, 늘처럼 원규샘이 학생들을 대동하고.

내려놓는 물건들이 많았다,

저이들 주전부리는 저이들이 준비해왔다고.

원규샘의 조언이 있었을 게다. 늘 그리하는 충남대 사범대 예비교사들이다.

"하하, 샘들 길을 잘 들이는구나..."

산골 궁한 살림을 살펴주는 이들이 고맙다.


물꼬안내; 그렇게 공간쓰임을 알 때 비로소 이 허름한 공간이 생기를 갖는다.

밥상을 준비하는 동안 구성원들은 본관청소부터 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모든 것에는 뒷면이 있다',

'일은 일이 되도록',

언제나 익히는 그 말들의 의미를 새기며.


오후에는 두 패로 나뉘어 움직였다; 지붕수리와 물꼬 품앗이샘 농가 돕기.

지나간 겨울 김장하던 날 눈보라에 훌러덩 넘어갔던 흙집 지붕을

겨울 계자 직전 이웃마을 대식샘 불러다 콧물 찔찔 흘려가며 곱은 손 호호 불어가며 못질을 했으나

못마다 실리콘을 쏘는 일은 여직 미뤄져왔다.

장순샘네로 간 이들은 포도상자를 접었다.

먼저 들어와 계자를 준비하던 희중샘과 경철샘이 무의식중에도 하던 그 상자접기.

그리고 땀에 전 모두 물한계곡에 다녀온 저녁이었네.

아, 장순샘네서는 또 수확거리들이 같이 왔다,

가지며 노각이며 토마토며.


밤, EBS 한국기행에 물꼬를 담았던 촬영감독님이 가족 분들과 왔다.

아이들의 밥상머리공연이 있었고,

목청껏 노래들을 불렀고,

아카펠라도 하며 즐거웠다.

밖에 불도 피워 샘들이 들어오며 사온 고기도 구웠다.

부모님이 고깃집을 한다는 감독님이 손수 구워주셨다.

아이들과 젊은 샘들이 주고받는 노래와 춤이 불보다 더 밝았던 밤.

夜단법석이었을새.


그런데, 가마솥방에서 자리를 정리하기 직전

샘들이 어렵게 어렵게 봉투를 내밀었다.

여비를 모아 저들 먹을거리를 절반 사고 나머지를 후원금으로 낸다는,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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