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21.쇠날. 갬

조회 수 704 추천 수 0 2015.09.12 11:48:35


잠비 내리는 오전이었다.

잠비... 바쁜 일이 없어 비가 오면 낮잠을 자기 좋다는 여름비.


10학년 한 아이가 왔다. 사흘 머무른다.

스파게티를 먹었다.

“물꼬에서 이런 것도 먹어요?”

하하, 그런 거 자주 먹는다.

가지가 나오면 가지 스파케티, 토마토 나면 토마토 스파게티 그때 나오는 재료로 되는 대로.

하여 때로 이 산골의 부엌은 화수분이 되기도.

오늘은 갓 따낸 토마토로 소스를 만들어 얹고 볶은 가지로 장식하여.


함께 민주지산에 갔다. 올랐다까지는 아니고. 

한동안 찾아보고 있는 길이 있다.

정상에서 내려오며 밟았던 길인데, 가늘고 마른 계곡을 끼고 깊고 짙은 숲을 이룬 그곳을 사색의 길로 삼자했는데,

되짚어 오르는 길을 못 찾기 여러 차례였다.

오늘 역시 길만 헤맸다.

비탈은 가팔랐고, 예상한 계곡은 물 방향이 다른, 전혀 다른 계곡이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떠나는 모험길이 늘 그러하듯

아끼는 친구와 함께하는 느꺼움만으로도 충분하고 충분한 풍요로움이었다.

더덕 한 뿌리와 싸리버섯을 없는 길을 만든 전승물처럼 들고 왔네.


자원봉사인증기관과 절차 관련 통화가 길었다.

어떤 식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 여러 가늠도 생기다.

제도에 대한 지나친 거부감은

때로 아무것도 아닌 절차를 지레 어려운 마음이 들게 하고는 한다.

인터넷을 다루는 일만해도 사진 찍고 올리고 하는 일을 전 국민이 다 하고 사는 판에

정작 버젓이 글 읽을 줄 알고 들을 줄 아는데도 하려들지 않아 도대체 맹.

제도학교로 아이를 보내고,

교무행정 자리도 오래 비워두고 있으면서,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려하지도 않으니,

이제 좀 해야 할 때.

닥치면 어찌어찌 다 사는 게 사람 일이지.

너무 오래 외면만 했었네.


23시 긴 상담. 계자를 다녀간 한 아이의 어머니.

장애 동생을 가진 아이가 가지는 삶의 무게,

동생에 대한 책무, 혹은 동생에 대해 교차하는 감정을 헤아리는 시간이었고,

큰 아이에게 미안한 부모의 미안함을 위로한 시간.

지난 세월에 대해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지만,

서로 잘 살펴보고 서로 해명하고 이해하고

그리고 그 과거와 화해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는지.

나는 때로 이심전심이란 말을 그리 기대지 않는다.

그래서 생기는 생채기가 얼마나 많더뇨.

알겠지 하지만 모르고, 그래서 기대가 분노로 바뀌기도 하는 그 마음 흐름 말이다.

말하시라, 말하시라, 말하시라. 그래야 아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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