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12.흙날. 흐리다 엷은 비

조회 수 828 추천 수 0 2015.10.07 02:14:44


전라도의 한 도시에서 흑임자죽가루와 콩가루와 김부각이 왔다.

호두를 털었다.

가을이다.

고성의 수행모임 자리에 잠시 들린 길에 통영을 다녀왔다.


앞에 나열한 글들은,

첫 행은 늘 사람들이 거두어 물꼬에서 살아가니 고맙다는 말이고,

두 번째 행은 일상을 사는 산마을의 풍경이 그러하단 말이고,

세 번째는 가을이라 쓸쓸하고 가을이라 아득하며 가을이라 사람 보내기가 더 힘들더란 말,

덧붙여 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 그런 말이기도,

그리고 마지막 행은 통영 이야기를 이제 하겠다는.


“별 맛도 없고...”

통영에서 유명하다는 꿀빵을 두어 차례 먹었던가, 별맛도 없고 소문만 무성한,

그런데, 원조라는 곳에서 먹은, 아마도 따뜻해서 더 그랬을 것인데, 찾아갈 만하더라.

내내 ‘오미자꿀빵’으로 알았는데,

오미자가 들어갔거나, 오미자 닮은 게 섞였거나,

헌데 ‘오미사’라고.

오래전 빵집에서 일하던 이가 그 곳을 나와 여고 앞에서 구멍가게 빵집을 열었는데

간판도 없던 그곳을 사람들은 옆집 세탁소 이름을 붙여 오미사빵집이라 했다나.

그 빵집은 빌딩을 세웠고,

머릿돌에 평생 고생한 부모님께 바친다 씌었더라.


‘(전략)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령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 (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든데


명정(明井)골은 산을 넘어 동백(冬栢)나무 푸르른 감로(甘露)같은 물이 솟는 명정(明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平安道)서 오신 듯한데 동백 (冬栢)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


(후략)’


; 백석의 ‘통영’ 가운데서.

  (백석은 통영을 세 편 남겼다. 그 가운데 두 번째라 ‘통영 2’라 불린다.)


충렬사 문 앞 길 건너 왼편으로 백석 시비를 읽고,

오른편으로 명정을 들어갔다.

평안북도 정주 출신 시인이 남쪽 바닷가에서 들먹여지는 건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 때문.

좋아하는 사람이 나고 자란 곳을 보러 가서 한 편,

반 년 뒤 ‘동백이 피는 계절 시집 가버릴 것만 같은’ 이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한 편,

남행시초 연작으로 또 한 편을 남겼다.

그런데, ‘더꺼머리 총각은 정든 님 업고 오고 싶을 길이다’로 끝나는 남행시초 첫 편 창원도(昌原도)가

나는 백석의 통영 편의 마지막 편으로 읽히더라.

순전히 내 생각에 말이다.

어쨌든, 난을 만나지 못하고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았던 백석을

옛 사당 올려다보며 그려보았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시인은 가도 시와 명정은 거기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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