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 5.달날. 맑음

조회 수 695 추천 수 0 2015.10.31 23:52:18


새벽, 영동역에서 묵어가는 이를 보내고

황간역으로 이동하여 사람들을 기다리다.

어둠을 밀고 있는 아침은 매우 추웠다.

오늘은 괴산 유기농 엑스포에 동행키로.

보고, 듣고, 걷고, 그리고 이야기.

유기농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대개 그런 기대를.

그런데, 아쉬웠던. 흔한 축제에 유기농 구색을 조금 낸?

음,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과정이 가장 볼만했던.

아, 물꼬에 있는 이름 없던 식물은 꽃기린이더라.

맨발로 돌아다니며 가을을 걸었고,

제충국을 몇 뿌리 실어왔다.


가는 길에, 또 돌아오며 청천에서 몇과 차를 마시다.

각자 전 생애를 훑어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다.

운명이 그려낸 그림들, 그리고 살아갈 날들.

모두 별일지라, 그러면 운행을 할 테지,

원심력과 구심력이 작용할 테고.

그런데, 지나간 흔적이야 궤적으로 기록될 것이지만

어찌 알겠는가, 남은 날을.

대개 사주를 본다거나 점을 보는 일도 지나간 건 잘도 맞힌다지.

그럴 밖에, 어떤 식으로든 개인의 삶 위에 흔적을 남기지 않겠는가.

그의 표정으로 그의 언어로 그의 손으로 그의 얼굴로.

결국 사주니 점이니 하는 것들은 우리에게 남은 날을 위해 나누는 이야기들 아니겠는가.

과거를 묻지 마세요, 그거지.

뒤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지.

자, 남은 걸음은 뜻대로(자신의) 걸어보기로!


순전히 차를 마시던 시간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을 했으리.

자꾸만 조금 전의 일, 혹은 가까운 시간의 일들은 까마득하고

지나간 먼 날들이 선명해진다.

리보의 법칙이라.

기억력이 감퇴하면 최근 기억부터 사라진다지.

기억뿐 아니라 살아오면서 획득하게 된 모든 심리학적 기능들은

획득한 순서를 역행하면서 잃어버리게 된단다; 리보의 법칙(Ribot’s Law)

며칠 전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며도 그 법칙을 생각했더랬네.

“기억이란 비어 있는 여백에 쓰인 것이 아니라,

이전 기억이 색색의 분필로 가득 쓰여 진 흑판 위에 덧붙여 씌여지는 것이다.”

빈칸에 제대로 쓰인 것은 시간이 지나도 생생히 남지만,

이미 빽빽이 채워진 흑판에 덧붙여진 기억들은

그 일부만 소실되어도 다시 알아보기 힘들게 되는 것.

그런데 신경생물학적, 그러니까 과학적으로는 그런 것도 그런 거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자신의 근원으로 가려함 아니겠는지,

세상을 떠돌다 돌아가는 집처럼 고향처럼 어머니처럼.

음... 나이를 먹었네. 그것도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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