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2.달날. 비 다녀간 아침

조회 수 812 추천 수 0 2015.11.06 16:45:26


“자, 일어나...”

눈을 뜨며 자연스레 아이들과 끌어안았다.

고맙다, 이 날들 함께여.

우리 서로 서로를 살펴주고 있다. 위탁교육 중.


해건지기. 수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천천히 걷는 가을길 같은 하루였다.

이런 흐름으로 공부하면 좋겠다, 제도학교도. 조금만 천천히.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행복했다.


학교에서도 보육원에서도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힌단다.

“왜 그래?”

물었다, 너는 좋지만 그 사람은 불편할 수도 있잖아,

너는 재밌지만 다른 사람은 그게 싫을 수도 있잖아, 했다.

“아, 그런 생각은 못했구나.”

몰랐다는 아이다. 알면, 습이 된 행동이야 다르기 쉽지 않지만 알면 나아질 수 있잖을까..


아이랑 지나온 그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괴롭다.

꼭 뭘 이리 해야는 걸까, 자꾸 묻게 되는.

편하게 그냥 흘러가면 안 될까?

위탁가정에 맡겨져 학대당했던 아이다.

먹는 걸 훔쳐 먹는다고 뜨거운 물에 손이 담겨져 아직도 화상자국을 달고 있다.

폭력에 노출됐던 아이의 어린 날을 점검하는 시간,

꼭 이렇게 또 되내이게 하는 게 옳은가...

“그런데, 요새는 안 그래?”

이제 더는 음식을 훔쳐 먹지 않는다고 했다.

“언제 없어졌니?”

“그냥.”

‘시간’이 필요한. 많은 일이 그러하듯.

시간 속에, 자라서 아이는 그 습이 사라졌다고 했다. 물론 그의 환경도 바뀌었다.

위탁가정을 떠나 보육원에서 살고 있다.


아침저녁 수행하고(해건지기, 그림명상),

같이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풀을 맸다. 어깨겯고 일하는 재미!

저녁엔 같이 고추다짐장(고추장물이라고도 하고 고추다대기라고도 하는) 만들었다.

멸치도 다듬어 볶아 넣고.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옥샘, 저희 집에도 좀 보내주세요.”

“야, 물꼬가 더 가난한데 물꼬에 니네 집 걸 보내야지. 하하.”

정말 맛나나보다. 별미더라.

“가족 같애요.”

아이에게는 피붙이가 없다.

“외갓집에 온 것 같이...”

또 다른 아이는 마음을 부릴 외가 같은 곳이 없다.

그렇게 마음을 부리는 일이 여기서 우리 보내는 시간이겄다.

오늘 밤에는 양말 빨기를 안내했고, 날마다 그렇게 하기로 한다.


아이들과 건강하게 살기.

건강하게 살면 건강하게 생각할 수 있으리라 한다.

그러면 또 다음 걸음이 건강해질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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