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1.흙날. 맑음

조회 수 691 추천 수 0 2015.11.23 15:52:27


새벽기온 0도.

바람이 몹시 불었고, 쑤욱 차졌다.


연탄 천 장이 또 들어왔다. 앞서 천 장이 왔더랬다.

땔감은, 올해 쓸 것들은 있다.

오후, 학교아저씨가 기락샘이랑 류옥하다랑 학교 본관 뒤란 비닐을 쳤다.

제도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그렇게 틈틈이 산골살림을 살펴준다.

이제 무말랭이를 만들고 무시래기를 말릴 일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김장.

(쌀은 벼농사를 놓은 지 여러 해니 갈무리 운운할 것 아니고.)

그리되면 눈에 갇히는 날도 걱정이 없을.


'옥선생님, 제가 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멕시코로.'

'얼마나?'

'기약은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갔다,

결정하고 한 달도 안 된 시간동안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하고 가방을 싸고.

차마 보지 못했다. 목소리도 듣지 않았다. 문자만 남았다.

그 누구보다 나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정리해주던 선배를 황망히 보냈고,

한 때 운동가요를 만들다 절집으로 들어가 스님이 된 선배를 보냈고,

그리고 이제 그를 멀리 보냈다.

두어 달 벗들을 그리 잃고, 쓸쓸하였네.

20년 전 가장 가까웠던 벗을 백혈병으로 보내며

슬픔보다 그가 없는 세상이 쓸쓸하여도 나는 이적지 살았고,

보내고 보내고 또 보내고도 이리 살았네, 살아있네.

아무쪼록 몸 보전하시라. 언제고 다시 오시라.


약이 왔다. 비위를 앓고 있었다.

간간이 그 소식 듣고 있던 한의사인 벗이 보냈다.

남도에서 어르신이 보낸 것이며 이웃에서 준 것이며

좋다는 음식들이 있었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뭘 하나 보냈어요.

흑마늘이며 당도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 미루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약을 좀 써야지 않을까...

칡즙은 하루 한 봉만 드시고

아님 두었다 드셔도 되구요.

멋대로 보내는 약이지만 부디 차도가 있으시기를.’

그의 말은 늘 시이고, 그의 글 또한 그러하며, 그 앞서 그의 마음이 시라.

먹먹했다. 누가 내게 그리할 것인가.

당신이 또 나를 살리나니, 적막한 삶이더니.

그는 알까, 모두 보내고 달랑 당신만 남겨놓은 내 삶인 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4826 [바르셀로나 통신 16] 2018.12.29.흙날. 맑음 / 도시 이야기 2; <바람의 그림자> 옥영경 2019-01-10 1190
4825 [바르셀로나 통신 15] 2018.12.21.쇠날. 맑음 / 도시 이야기; 바르셀로나 옥영경 2019-01-09 1617
4824 [바르셀로나 통신 14] 2018.12.19.물날. 맑음 / 밥 옥영경 2019-01-08 1095
4823 [바르셀로나 통신 13] 2018.11.18.해날. 흐림 옥영경 2018-12-20 1175
4822 [바르셀로나 통신 12] 2018.11.10.흙날. 맑음 옥영경 2018-12-20 973
4821 오늘은 박상규 기자를 말하기로 함 옥영경 2018-12-09 1055
4820 [바르셀로나 통신 11] 2018.10. 6.흙날. 맑음 옥영경 2018-10-07 1338
4819 [바르셀로나 통신 10] 2018. 8.22.물날. 맑음 옥영경 2018-08-23 1514
4818 [바르셀로나 통신 9] 2018. 7.22.해날. 드물게 저녁 소나기 다녀간 / 여름 밥상 옥영경 2018-07-23 1404
4817 [바르셀로나 통신 8] 2018. 6.24.해날. 맑음 옥영경 2018-07-07 1458
4816 [바르셀로나 통신 7] 2018. 4.27.쇠날. 맑음 옥영경 2018-04-28 1506
4815 [바르셀로나 통신 6] 2018. 4.26.나무날. 아직 맑음 [1] 옥영경 2018-04-28 1684
4814 [포르투갈 통신] 2018. 4.22.해날. 맑음 옥영경 2018-04-28 1351
4813 [바르셀로나 통신 5] 2018. 4. 3.불날. 맑음 옥영경 2018-04-06 1452
4812 [바르셀로나 통신 4] 2018. 3.19.달날. 잔비 내리는 밤 옥영경 2018-03-20 1352
4811 [바르셀로나 통신 3] 2018. 3. 2.쇠날. 흐림 / 사랑한, 사랑하는 그대에게 옥영경 2018-03-13 2458
4810 [바르셀로나 통신 2] 2018. 2. 7.물날. 맑음 / You'll never walk alone 옥영경 2018-03-12 1375
4809 [바르셀로나 통신 1] 2018. 1. 7.해날. 비 갠 뒤 메시는 400번째 경기에 출전하고 옥영경 2018-03-12 1245
4808 [2018.1.1.해날 ~ 12.31.달날]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옥영경 2018-01-23 2386
4807 2017.12.31.해날. 흐림 옥영경 2018-01-23 138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