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 날에도 그럭저럭 콩을 수확했고, 어찌어찌 털어본다.

적지 않은 밭에서들 아직 콩대가 서 있었다.

가뭄으로 허덕이던 오뉴월이더니 볕 보기 쉽지 않은 날이 오래이다.

사람살이가 그러하니 날씨도 그악스러운?

거둔 콩을 털었다.


문제의 흙집은 말 그대로 문제의 흙집으로

얼마 전 또 문제를 일으켰다.

본관 뒤란으로 덧대 아이들 씻는 곳으로 쓰는 공간인데,

여자 씻는 곳 벽에서 수도가 새고 있었고,

해결을 위해 분주하고 있었다.

낡은 살림은 늘 긴장을 불러오고,

때로 산골살이는 두려움을 동반케 한다.

이 두려움의 실체는 내가 대응할 수 없는 문제일 때, 해결이 쉽지 않은 데서 오는 것.

그리고 반복이 주는(낡고 오랜 살림이니) 힘겨움에서도 오는.

이웃의 오준샘이 며칠 전 걱정을 듣더니

오늘 건너와서 상황을 진단했고, 아는 분께 전화 넣었다.

와주어 고마웠고, 나서줘서 고마웠다.

전화를 받은 설비업자는 다음 주에 들리마 한다.

사람 하나 부르는 일도 쉽지 않은 깊은 산골!

아무쪼록 수월한 공사일 수 있기를.


“공공재의 낭비가 심해요.”

가끔 아이들은 저들 학교 소식을 전한다.

식당에서 쓰는 쇠로 된 컵을 휴지통에서 꺼낸 게 꽤 긴 줄이라나.

그러니까, 라면을 먹는다고 컵 하나 젓가락 하나 들고 나가서

그리 먹고는 휴지통에다 버린단다.

그걸 식당 아주머니들은 또 주워 씻고 정리한다고.

“허허, 정말?”

그 정도는 아니어도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곳들에서 많이 거론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같이 쓰는 물건들에 대한 홀대였다.

농사를 짓는 곳에서는 자주 녹슨 호미를 밭고랑에서 발견하고는 한댔지.

아, 사람이란 정녕...

너도 변하지 않고 나도 변하기 어려울 거다.

어차피 모두 살던 대로 살 거다.

어디를 간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다.

도시에서 시골로 옮긴다고 달라지는 게 결코 아니다.

문제는 늘 ‘나’이고, 내가 변하지 않는 한 문제는 언제나 내 앞에 있다.

하지만 밭고랑에서 호미를 발견할 때마다

반성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호미를 걸 수 있지 않겠는지.


어떤 시간을 견뎌야할 때가 있다.

사람들은(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그런 시간을 어떻게 견디는가 물어오고는 한다.

“나도 별 다르지 않지 뭐. 다 밀어놓고 자거나, 숙제 같이 있던 단순한 일거리를 하거나...”

사랑을 보내는 네 만큼이야 하겠냐만.

까부룩까부룩 병든 새처럼 앞으로 쏟아질 듯한 자세로 겨우겨우 살듯 호흡하고

곡기를 입에 넣지도 못하고 한 이틀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가마솥방 수건 장을 정리했다.

우리 수건 좀 많다.

아이들이 남겨둔 것들, 사람들이 이곳에 더 필요할 거라며 날라다 준 것들.

빨아 넣어둔 그 많은 수건들을 다 꺼내 일일이 털고 일정한 규칙으로 개고 넣고.

살펴 삶을 것들 빼고 걸레로 쓸 것 구분하고.


양방으로도 한방으로도 치료를 못하고 있던 아이를

요새 대체의학으로 치료해주고 있다.

당장 피 흘리거나 아주 심각한 병이 아니어 가능한 일이겠지만

오늘날 우리 손을 떠난 삶의 기술을 회복하려는 작은 의지이다.

삶과 죽음도 집안에서 관장했던 그런 시절에 대한 복구 같은 것.

저승으로 보내는 일도 새로 태어난 아이들 맞는 일도, 아픔만 해도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아도 되던 그런 시절이 분명 있었다.

지금도 그걸 재현할 수 있고, 물꼬의 삶의 어떤 부분은 그런 것과 크게 닿아있다.

저항이다! 살아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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