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 8.해날. 비

조회 수 690 추천 수 0 2015.12.04 06:48:45


11월에 다녀오마던 여행을 언제 도모할 수 있을까 엿보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오늘, 삶이 여행이라, 여기가 여행지라 싶었다.

깊이깊이 이 산마을에서 더 깊숙이 지내보는 11월이 되리라.

나는 지금 여행 중.


무슨 가을비가 저리 모다깃비(뭇매를 치듯이 세차게)로 내린다니.

그러다 초가을 건들장마처럼 내리다 멈추다 내리다 멈추다.

사흘이 그리 흘렀다.

빗길에 사고 많다 했다.

멀리 바닷가에서 서울까지 가는 고속버스에 오른 벗이 있었다.

무사하시라.


이른 아침 산마을을 나가는 아이의 밥상을 차렸다.

아침잠이 많은 아이에게 새벽은 얼마나 큰 벽일까.

아이고 어른이고 나고 너고 처처에 벽은 또 얼마나 많으려나.

모든 삶에 연민이...


마을에선 김장을 시작했다.

올해도 물꼬의 배추는 유기농장 광평에서 조정환샘이 길러주신다.

우리는 무를 키워 나누기로 했다.

오전, 실하게 크고 있는 무밭을 돌아봤고,

학교아저씨는 본관 복도 안 창문에 뽁뽁이를 붙였다.

그리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웃 청년 하나 오늘 상담을 하기로 했는데

소식 없었다.

우울이 이 가을처럼 깊어지지 않기를.


고요한 주말이었다.

비 때문에 더욱 고즈넉했으리.

이번 주말로 마을에선 거의 감들을 다 깎았다 했다.

(그런데, 비가 이리 많아 곶감이 괜찮으려나)

더욱 조용해진 마을.

저녁 달골은... 홀로 비에 잠긴 달골에서

<담론>을 쥐기 이틀째였다.

그리고 시 한 편 곱씹었다.


길모퉁이에서


언제는 저렇게

오래 된 나무속에

그 푸른빛이 들었다가

오늘 이렇게

어머니 생각을

하게 할 줄이야

언제는 이

몸뚱이에도

긴 그림자가 들어 있어서

여기서, 여기서

그림자 지워지도록

앉아 있을 줄이야


-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장석남/문학과지성사, 1995) 가운데서


사람 하나 그렇게 내게 앉아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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