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3~24.달~불날. 흐리다 비

조회 수 728 추천 수 0 2015.12.14 05:44:44

   

물꼬에 보태주는 이야기 하나 하나가 누추한 삶을 견디는 힘이 되어 주고는 한다.

삶의 의욕이라 불러도 좋을.

겨울 준비에 바쁠 손을 멀리서 아이고 어른이고 걱정들 해주었다.


소설(小雪)엔 무지개도 땅 아래로 숨어든다는 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빚을 내서라도 추위를 한다는 소설이었으나 비만 내렸다.

소설 전에 김장을 하기 위해 바빴던 손길이

이맘 때 여러 가지 월동 준비를 위한 잔일로 서두르는 절기.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와 호박을 썰어 말리고,

옛적엔 목화를 따서 손을 보기도 했다지.

겨우내 소먹이로 쓸 볏짚을 모아두기도 하고.

달골 단도리도 서둘렀다.

창고동은 겨울 한 철 문을 닫아건다.

수돗물을 차단하고, 변기의 물들을 다 빼두고, 창문을 여미고.

겨울짐도 교무실로 내렸다,

눈이 내려 길이 험해지면 달골 오를 일이 없도록.

예전 같으면 11월 보름께면 할 것을 푹한 날씨에 그만 게을러져 이제야.


이웃마을 유기농장 광평에 들러 김장 일정을 의논하다.

올해도 우리 배추는 그 댁 밭에서 컸다.

“우리는 벌써 했어. 물꼬는 언제 할 거라?”

예년보다 한 주 일찍 하기로 한다.

12월 첫 주말에 해오던 걸 11월 마지막 주말로.

“그건 나중에 써.”

나무날 트럭을 빌려 배추를 실어오겠다 하자

그 손을 나중에 아쉬울 때 쓰라며 조정환샘이 실어주겠다셨다.

“아니 그럴 게 아니라 그냥 여기 소금물에 절여 가져가.”

일은 또 그리 흘렀다. 쇠날 그곳에서 절이기로 한다.

김장은 배추절임이 반이라.


마을의 한 형님 댁에서 찾았다.

“내가 갖다가는 못 주고...”

뭘 좀 챙겨가란다.

김장이며 일을 죄 벌여놓고 계셨다.

“늘 일을 보고도 손도 못 보태네...”

지나간 여름엔 아이들과 요리에 잘 쓰라며 자주고구마를 챙겨주시더니

이번엔 또 ‘자주무’다.

“이것도!”

단감 좋아한다고 오늘 따왔다며 한 보따리 나눠도 주시고,

언제나 실한 파를 탐내는 눈을 위해 또 한 아름 대파를 뽑아주셨네.


교육청 일도.

자유학기제 페스티벌은 진로 축제로 가닥이 잡히고

몇 곳 섭외 전화가 오갔다.

지원팀장이란 이름을 걸었으나 사실 별 하는 일 없다,

전담 코디네이터가 있기도 해서.


제주도 올레길을 걷던 벗이 귤과 옥돔을 보내왔다.

지난해 여름 아일랜드에서 달포를 보냈고,

그때 벗에게 보낸 몇 줄의 글이 있었다.

‘연연하다는 과거에 연연하지 마라에 쓰이는,

집착하여 잊지 못하다 하는 자동사이기도.

하지만 연연한 정을 품다는 문장에서처럼 애틋하게 그립다는 형용사이기도 하다.

내 그대를 연연하노라, 오늘.’

여차했네.


자기연민으로 괴로운 순간이 있다.

자기애가 강한 것도 문제지만 자기연민이 지나친 것도 문제.

스스로 가련한 자기연민주의자는 타인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준 자신은 잊고

정작 타인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만 기억한다.

그래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그리고는 더욱 더 불행해진다.

나아가 불행을 통해서 자기 삶의 서사가 완성되는 순간까지 불행을 잡고 늘어지고,

심지어 불행을 더 편안해하기까지 한다.(자신이든 자신을 둘러싼 이들이든)

그런데, 그것 또한 다른 형태의 인정욕구, 혹은 외침 아니겠는가, “나 여깄어!” 하는.

자기애와 자기연민 ‘사이’(중간 정도의 의미로) 어디쯤에 우리 자리가 있으면 딱 좋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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