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5.물날. 밤 진눈깨비

조회 수 703 추천 수 0 2015.12.14 05:51:38


밤, 괘방령을 넘어오고 있었다.

비는 아주 천천히 진눈깨비로 변해갔고, 차는 더뎠다.

“눈 옵니다.”

혹 늦은 밤 달골로 가서 차가 미끄러지기라도 할까 학교아저씨가 문자를 넣어왔다.

드디어 달골을 내려와 된장집에 입주하다. 겨울 삶이다. 늦은 밤 대야를 윤나도록 닦았다.

(겨울은 학교의 오래되고 낡은 사택에 모여서 난다.)


음... 섣달의 위탁교육이라...

위탁교육을 신청해왔다.

11월이면 사실 상설일정은 마무리를 짓는다, 긴 겨울 앞에.

계자며 빈들이며 짧은 머물기는 있지만 장기 일정은 여간해서 잡지 않는다.

겨울은 열악하니, 많이.

달골에서만 지내자면 괜찮겠지만

70년대 지어진 작고 낡은 사택에서 오래 머물기는 쉽지 않을 것.

해우소도 바깥.

한 이틀 자고 가는 거야 무리 없지만 내내 지내기가...

어떠려나?

그리고 아이를 건사할 만큼 나는 겨울을 잘 견뎌낼 수 있는가...

김장을 건너가고 논의키로 한다.


귀농한 이웃이 있다. 벗이 되었다.

오늘은 그의 서러운 시간을 들었다.

못 배운 이의 눈물겨운 삶의 여정이었다.

이후 검정고시를 치긴 했지만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을 못하고

대도시에서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작은 가게를 하기에 이르고

12시간씩 노동하며 살았다 했다.

“한 달에 몇 번이나 쉬었겠어요? 한 두 번이면 많지.

그러니 시골에 와서 얼마나 좋겠어요?”

몰랐다, 몰랐다, 몰랐다.

나는 배운 이들이(것들이!) 하는, 말 잘하는 이들의 말에 그리 귀 기울이지 않는다.

말이 어눌한 자신을 스스로 감사하게 여기기도 하고.

말은 번지르르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니.

어줍잖게 들었음직한 지식을 늘여놓는 치들을 심지어 경멸할 때도 있다.

어디서 들었음직한 것들로 짜깁기한 숱한 지식에 질린 내게

그가 몸으로 보여주는 삶은 경이로웠고,

그의 사유는 자주 신선했다.

그런데, 그 사유의 배경이 무엇이었던가를 알게 되면서

내 스승은 늘 이 삶의 현장 속에, 몸을 움직이는 이들 속에 있다는 새삼스런 깨달음이.

온 몸으로 정성스럽게 애쓰면서 살아야지,

얼마쯤 한없이 가라앉던 마음을 좀 세워보기도 한 시간 되었다.


는 이 겨울을 누워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려

염주처럼 윤나게 굴리던

독백도 끝이 나고


문정희 선생의 시 한 구절이었지.

염주처럼 굴리던 독백이란 구절이 감겼다.

혼자 중얼중얼

이제는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깊은 산골 노인네처럼 그렇게 보낸 얼마쯤이었더랬다.


그리고,

‘모든 글은 내 발 앞에서 멈추어 다가오지 않았고, 내 팔은 거기 닿지 않았다.’

써야하는 글 앞에서 그런 문장을 생각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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