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락눈 내리는 아침이었다.
멀리서 책을 실어올 손님들이 있는데...
책방에서는 책이 들어올 영역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사람도 같이 보내니까 자리만 만들어놓으면 돼요.”
그리 마음써준 논두렁 상찬샘이었다.
신문기자로 오래 재직했던 분이 퇴임을 하며 그동안 쌓아둔 책을 기증할 곳을 찾았고,
논두렁 상찬샘이 그 책을 받아 차에 실려 보냈다.
물꼬에 그리 도움 될 책들은 아니지 싶다며
불쏘시개로라도 요긴할 거라 눙쳤다.
“내 관심 없다고 모두에게도 그럴까.
다양한 책이면 또 누군가에게 잘 읽힐 수도 있잖겠어요?”
아침에 출발했다는 차는 오후의 중간에야 들어섰다.
눈발은 아주 굵어졌다.
오는 데도 눈 많았단다.
서둘러 책을 들이고 따뜻한 차 한 잔에 잠깐 엉덩이 붙이고 금세들 떠났다.
간장집 해우소 묵은 먼지를 쓸어냈다. 겨울 사택 입주 준비 가운데 하나.
된장집 이불빨래도 이제야.
연탄불 피운 방에 널어 말릴 참.
사택은 자주 방치되었다 그렇게 아쉬울 때 눈앞에 있다.
그제야 귀한 줄 알고 부랴부랴 손이 바빠진다.
춥기 아직 견딜만하여 그래도 학교에서 움직임이 아직은 여유가 있다.
수행방에 들어가 그림 하나 잡았다.
차곡차곡 색을 올리는 작업을 했다.
조각천으로 이불을 하나 만들기 위한 재단도 틈틈이 하고 있다.
시끄러운 마음을 재우는 데 이만한 일들이 있던가, 어디.
집단 광기. 우리 사회에서 자주 마주하는 장면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적을 필요로 하는 구나,
그 상황 때문에 서럽고 우울했다.
왕따 문제는 또 어디 다른가.
아이들의 힘든 상황이 미움의 대상을 필요로 할 만도 할 것.
물론 미움을 받는 이가 그만한 결함을 가져있는 경우도 있다지만
가혹한 행태를 당할 만큼의 이유는 결코 아니다.
대개 삶의 고단함이 그리 발현되기도.
타블로이던가, 학력의혹 어쩌구 했던, 그때의 집단 광기도
대한민국에서 사는 삶의 고단함이 그런 광기를 불렀다 여겨 쓸쓸하고 슬펐다.
그래서! 남이 미워질 만큼 힘들게 일하지 마라,
이 열악한 산마을의 일에서 선생들한테 자주 하는 말이다.
최근 한 벗에게 미움을 키우고 있었다.(애증이었다는 표현이 더 옳은)
산골 삶의 고단함으로 그랬던 건 아닐까.
까닭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관성이 물건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
한번 출발한 방향성은 자꾸 그리 내달리기만 했더랬다.
그런데, 상황을 바꾸지 않는 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 상황은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