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내리던 비.
오후 비는 거세졌다.
돌탑을 걷어낸 곳에 건너편의 단풍나무 자리를 옮기다.
그 둘레 돌을 쌓고 마무리.
삶터를 옮기는 일은 생이 흔들리는 일.
그에게 좋은 자리이기를.
종일 글과 씨름하다
시집 두 권을 곁에 두기도 했다.
젊은 시인 황인찬의 <구관조 씻기기>와 관록의 시인 신대철의 <무인도를 위하여>.
황인찬은 신대철에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황인찬의 ‘무화과 숲’에서 신대철의 ‘칠갑산 2’를 보았다.
‘이른 아침 山 속에 들어간 사람은 영 나오질 않고 희마한 물소리, 물소리, 마을로 내려간
사람도 도중에 가을 山 속으로 들어갔는지? 소년들이 점점 평화로와지는 동안 山은 더 깊숙이
가을 속으로 들어간다. 山을 멀리 떠나 산 山사람들을 하나씩 가을 속으로 불러 들려 한번 들어가면
영영 나오고 싶지 않을 데를 찾아 미쳐 헤매게 한다’
황인찬의 ‘X’와 신대철의 ‘X’는 다른 걸 말하는 시였으나
같은 제목에서 같은 의미를 읽었다.
그렇게 맥을 이어가고,
그렇게 영향을 받고 훌륭한 시인이 태어나고.
사는 게 시이라, 시를 쓰지 않은지 오래다.
다시 시를 기웃거리고
그 바탕을 위해 책을 펼치기로 하는 날.
달래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결에 시가 이불이 되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