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엔 눈발까지 구경시켜준 이른 아침이었지요.

날이 매워졌습니다.

아이들 가는 날까지 기다려준 하늘이었나 봅니다.

물꼬 뒤에 하늘 있다, 때때마다 물꼬의 절묘한 날씨에 우리들이 하는 감탄.

샘들과 아이들은 해건지기로 이불을 털고,

교무실에선 대표기도 하듯이 모두를 대신한 대배 백배.

우리 아이들 살아가는 걸음이 아무쪼록 순조롭기를, 우리 하나하나가 평화 되기를.


간밤, 큰 아이들이 캠프의 밤을 즐기고 싶어 했지요.

샘들이 모른 척하기로, 너무 늦지 않는다면.

어른의 최대 미덕은 때로 속아주기, 아는 척 안하기.

잠자리에 들기로 한 시간 (아마도) 우빈 성빈 윤호 재훈이 여자방에 건너가 잠시 수다,

그런데 잠자리 예민한 (아마도) 여원과 진선이의 불평이 있자

여자들이 남자방으로 건너가기로 했다나요(아마도).

그래서 이번에는 (아마도) 유지 지윤이가 남자방으로.

뭐, 오래지 않아 조용해져서 굳이 샘들이 나설 것 없던.

어찌 들떠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산과 집 떠난 캠프와 마지막 밤, 좋은 친구들, 따뜻한 어른들이 있는데.

오래전 일들을 생각했습니다.

과거 진보적인 젊은이들이 교사로 주로 모였던 계자,

일꾼 하루재기가 무려 서너 시까지 가기 예사였지요. 회의주의자들!

당시 계자 사람 규모가 아이 쉰에 어른 서른 가까이였으니 말의 총량도 많았을 테고.

그러면 밤을 새 보겠다 자지 않고 있던 아이들이 샘들을 위해 부침개를 부쳐 내주기도 했던.

그게 벌써 20여 년 전인가요.

책방을 잠시 내줄 수도 있었을 것을,

그러면 잠귀가 예민한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됐을 텐데.

“아해들아, 다음부터는 공식적으로 요청해보려무나.”


먼지풀풀.

우리 지난 자리 청소를,

나아가 누군가가 우리를 맞기 위해 준비해준 것처럼

우리도 이곳을 쓸 다른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마음 내서 움직이기.

가방도 풀었다 다 다시 싸기도.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갈무리글’.

우리 어찌 지냈던가, 속틀을 보며 되짚어보았습니다.

꼭 잘 지냈다고 글이 또 그만큼인 건 아니던데,

이번 우리 행복했던 날들이 글을 통해서도 그러할지요.


‘마침보람’, 졸업식 혹은 수료식쯤 될.

글집을 찾던 우석이 삐친 일이 있어 밥을 먹지 않겠다 했습니다.

아이들은 사람이 아니지요, 동물이어요, 동물.

동물적 감각으로 아는 거지요, 이 사람이 내 편인가 아닌가,

선한가 그렇지 못한가.

알리라 합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

불편한 마음 좀 거두고 갔네요.


“슬퍼요.”

1년 율이가 밥상 앞에서 마지막 밥이라 그러하다 했습니다,

밥이 편하고 맛난 계자였지요.

밥바라지 엄마들은 끝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놓아 주셨습니다, 남을 이를 위해.

설거지를 끝낸 엄마들께 차를 달여 내고나니

샘들이 이미 영동역에서 아이들을 모두 보냈을 시간.

기표샘이 운전하는 차에 남아있던 이들도 역으로 부랴부랴.


아이들이 갔습니다.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시간을 어찌 다 그릴 수 있을지요.

“좋다, 좋다 참 좋다!”

사람 사는 데 별 거 없다, 이리 마음 좋게 사는 거지,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이들이 있어 내 삶도 살아지는구나,

함께하는 동료들은 또 어땠던가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하는 시간만큼 의미 있는 게 어디 있을라구요.


역 맞이방에 둘러앉아서 하는 샘들 갈무리.

배가 고픈 시간도 아니고

움직이자니 날도 차고 기차를 먼저 타는 밥바라지 엄마들도 있고 해서.

지혜 형님이 물꼬에서 빌려 쓴 물건 하나를 굳이 빨아서

난롯가에 널어놓고 물꼬를 나왔더랬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야문 손끝, 끝까지 놓지 않는 긴장, 기꺼이 자기를 쓰는 것에 대해

좋은 예가 되어준 그니였지요.

'아이들과 함께해서 배운 점도 많았고,

계자를 통해 꿈을 더 키우게 되는 계기였다' 했습니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좋은 샘들과 함께한 좋은 한 때였다'는 휘령샘.

“물꼬를 보석이라 여기는 아이들과 함께해서 좋았고 여러 가지로 특별했던 계자.

마음이 항상 물꼬에 있을 것입니다.”(도영 형님)

이번 계자는 유달리 웃음이 많았더라,

샘들과 아이들이 잘 움직여주어 수월했다, 행복했다는 희중샘.

효기 형님은 사소한 것까지 신경써주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하고

다은 형님은 '좋은 인연에 감사하다'고.

“편안하고 따뜻한 계자였어요. 한편 스스로 역할에 충실했던가 묻기도 한.

아이들로 어른들로 모두에게 힘을 받았고, 고맙습니다.”

연규샘이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기표샘이 한 단 한 문장, 이만큼 우리들의 시간을 담아줄 말이 있었을라나요.

아, 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아이들이 가는 것을 보니 슬펐고, 만나서 반가웠고, 아쉽고, 행복했다,

밥바라지 1호기 백귀옥 엄마였지요.

2호기 조혜영 엄마는

행복했다 했고, 건강한 젊은이들이 주는 감동에 대해, 물꼬 존재에 대해 고마워하셨습니다.

모두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있었지요.


“아이들 갈무리 글에서 불과 밥이 어느 때보다 자주 언급된 것은,

물론 마음이 따스한 아이들이라 그러기도 하겠고, 밥이 맛이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계속 우리들이 밥바라지와 아궁이 지킴꾼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교사의 표현, 가치관, 관심, 말이 중요하지요.

... 그래서 언론기레기라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묻어버리고

마치 연예인 이야기가 우리들의 모든 관심인 양 왜곡하고,

우리 삶은 사라지고...”

정신 차리자,

우리 우리의 삶을 노래하고,

우리 우리 존재를 말하고,

우리 깨어있자, 소중한 것들을 지키자, 그리고 연대하자, 그리 목청 높였더랬지요.

“그리고, 지난 10년의 계자 희중샘과 학교아저씨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있어 또 이 계자를 마쳤나니,

(안에서는 안대로, 밖에선 밖대로 관심과 응원과 지지로,

글집만 해도, 낡은 복사기로 밤새도록 엮는 글집을

논두렁 금룡샘이 인쇄를 맡아주며 일을 덜어주고)

애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아이들도 새끼일꾼들도 어른들도 모다 안녕. 그리고,


(계자를 지나 어투는 다시 일상으로 가는군요)

희중샘 연규샘 새끼일꾼 도영 형님과 효기 형님 물꼬로 다시 들어오다.

살림을 살펴 저들 먹을거리들을 실어와 저녁을 먹다.

바지락된장에 고기도 굽고 머시멜로우도 굽고...

둘러앉아 먹고 쉬고 놀고.

“그거 이름이 뭔데?”

“만두놀이요.”

“이렇게 손을 모으고...”

“그거 제로게임이네.”

손씨 집안 병호도 와서 놀았네.

“그거 ‘남생아 놀아라’(강강술래 가운데)네.”

노인네와 청년들이 나이 간극 컸어도 결국 사람살이 문화 범주가 그리 다르지 않더만.

그게 보편이라는 것일 터.

사람살이 매일반이라거나, 사람 마음 다 같더라거나.

아니 삶은 반복된다, 그게 더 그럴듯한 표현일수도.

오늘도 즐거운 하루였다, 그림일기 끝에 꼭 쓰던 그 문장을 따라 쓰고픈.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빠져서 없거나 모자랄 때 결여(缺如)라 말한다.

앞에 괄호를 넣고 '사람으로서'를 붙일 수도 있을 테지.

결여를 가진 우리가(사람이), 하기야 누군들 결여가 없는가,

여기 모여 우리는 그 결여를 알고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수행하기에 아주 다른 완성된 우리가 있는 게 아니라 적어도 문제를 빨리 알아차리는 것처럼,

결여를 안고 있는 우리들이(없는 사람들이, 라고 말할 수도)

서로의 어깨를 기대지 않는다면 다른 살 길이 어딨을까.

그 ‘함께’가 우리를 살리나니.

함께여서 정토였고 극락이었고 천국이었던.

(계자에서 못다 잔 잠은 폭포처럼 쏟아져,

어느 순간 졸다 자판 하나의 글씨가 몇 줄을 찍혀있기도 하는,

하지만 이 밤에 계자 글들을 다 정리해야 바로 등 뒤 입을 벌린 호랑이 같은 다음 일에 먹히지 않으리,

샘들도 덩달아 새벽 3시에 다 이르도록 차를 끓여오기도 하고, 모여 같이 앉아 있어도 주고, 잠 깬다 산책을 다녀오기도 하고.)


초등 3년에 와서 7년이 된 윤호의 갈무리 글을 곱씹어 읽어보았다.

소중한 계자, 희귀한 학교, 보고 느끼고 경험하여 배우는 학교, 따듯하다, 미래가 될 친구들을 품고 있다,

물꼬를 거쳐가는 친구들은 따뜻한 촛불을 가지고 어두운 세상을 따뜻하고 환하게 비추어지게 도와주는 역을 맡아야만 한다,...

아, 우리 그런 곳이구나, 숙연해지기까지 하더라.


6학년과는 1학기밖에 차이나지 않는 중1계자였지만 무엇인가 묘한 기분이 드는 계자였다. 또 아주 소중한 계자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접할 수 있는 학교들은 아주 많다. 학생들을 삐뚤어진 규율 속과 잘못된 경쟁 속에서 공부하는 기계로 만드는 학교도 있고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미래의 진로와 도덕을 가르치는 학교들도 접할 수 있다. 그냥 이래저래 어정쩡하게 학기를 버리는 학교들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물꼬는 아주 독특하기보다는 희기한 학교이다. 보통의 학교들은 교과서를 외우거나 선생의 말을 들어서 삶에 필요한 학식 또는 대학진하가에 중요한 중,고 학교의 간판을 정하는데에 쓰인다. 물꼬는 외우거나 들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보고 느끼고 경험하여 배우는 학교이다. 또 삶에 필요한 학식보다는 인간관계나 예의 삶에서의 꿀팁(?)을 배울 수 있다. 물론 삶에 대한 학식, 대학진학도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하나이다. 하지만 구지 물꼬에서 배우는 것과 일반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비교할 때 “어떤 것이 더욱 가치가 깊은가?”라고 물어보면 답이 달라진다. 나는 물꼬가 따듯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물꼬는 앞으로 미래가 될 친구들을 품고 있다. 물꼬를 거쳐가는 친구들은 따뜻한 촛불을 가지고 어두운 세상을 따뜻하고 환하게 비추어지게 도와주는 역을 맡고 있고 앞으로도 맡을 것이고 맡아야만 한다.

나는 이번 계자 ‘글집꾸미기’에는 ‘존재만으로 가치가 되는 것’이라는 문구를 써서 넣었다. 우리 모두 존재만으로 그에 가치가 될 수 있어서 모두 개개인의 가치와 그 집단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 윤호의 161 계자 갈무리 글 가운데서


멀리 떠나는 벗에게 계자까지 곁을 지켜 달라 했다.

이 나라 저 나라가 다 가까워도 고개 하나, 도시 경계 넘기가 또 쉽지 않은 게 삶이더라.

아주 못 닿을 곳을 가는 것도 아닌데

가을겨울 줄지어 가까운 이들을 몇이나 잃고 나니

또 한 사람을 먼 곳으로 보내는 게 덜컥 겁이 나더라.

안에서는 샘들을 기대고 밖으로 벗들을 기대고 건너간 계자였다.

부모에게서 넘겨받은 아이들의 손, 그 무게가 어디 천근만근이기만 할까.

다시 부모에게 손을 넘겨주기까지 그 긴장이 어찌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있게 하겠는지.

아이들이 무사히 갔다.

잘 가라, 사랑하는 벗도 먼 길을 간다.

갈 사람 가고 남을 사람 남고

가는 이도 남는 이도 삶은 계속될 것이라.

님은 갔지만 나는 나의 님을 보내지 않았다는 시 한 구절처럼

사랑하는 이들은 가슴에서 집을 짓고 밥을 먹고 길을 걸을 테지.

우리 살아 또 만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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