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일 것이라 했으나 기온은 어제보다 나았다.

영하 3도.

하지만 흐린 날에 바람까지 부니 체감온도가 낮았던.

그래도 계속되는 아침수행.

충남대 사범대의 특강 건으로 오후 내내 조율과 의논이 있었다.


이튿날,

이웃마을에 사는 품앗이 장순샘이 건너왔다.

이 겨울 포도밭 두 개를 다 패냈더란다.

물꼬도 겨울 일정이 돌아가는 때라 손도 보태지 못했네.

국수를 내며, 고단했으나 뜨거웠던 우리들의 겨울을 노래했다.

마음 푹했다. 가까이 벗이 있으니 참 좋다.

저녁답엔 마을 엄마 한 분 다녀가셨다.

상담을 하고 싶다고 계자 미리모임이 있던 날도 다녀가셨다.

산마을에서 홀로 살아내는 일이 여간 만만치 않으시리라.

여동생 문제를 풀어놓으셨다. 혹여 물꼬가 도울 일이 있으려나...

알아봐드려야겠다.

“이리 말할 데만 있어도 감사한데...”

그 말씀이 또 고마웠네.

계자에 처음 다녀간 한 엄마의 메일도 닿았다. 샘들에 대한 찬사.

‘옥샘 같은 분들이 계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아이들에게 정말 "물꼬"같은 역할을 충분히 해주시는 것 같아서

흐믓했습니다.’

여름에도 갈 거냐는 말에 아이는 "당연하지"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했습니다.

‘고생 너무 많이 하셨고 감사했습니다.’

고맙다.

그 마음을 안고 또 우리는 여름을 맞게 될 테지.


밤. 격랑의 밤, 이라고 부르겠다.

재작년 안나푸르나를 오르며 안고 왔던 마음의 짐 하나 비로소 털었고,

보내지 못하던 사람 하나도 보냈다.

그리고... 지난여름 계자에서 물고 왔던 일 하나가 아직도 진행형이다.

계자 마지막 밤 강강술래를 하러 고래방으로 넘어가 모일 때

아이 하나 빙글빙글 홀로 돌다가 넘어져 뼈에 금이 가 깁스를 하고 돌아갔다.

(그래서였던 걸까.

앞의 계자에 처음 온 아이들은 그 다음 계자에 절반 정도가 이월된다.

하지만 지난여름 첫걸음 한 아이들 가운데는 유일하게 한 명의 아이만 겨울에 왔더랬다.)

지난 섣달 그믐날 병원비며를 포함한 부모로부터의 메일이 들어왔고,

15일까지 답을 드리겠노라했다.

새벽 3시,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 글월을 쓰기 시작했다.

내일(오늘이네)이면 사범대 학생들과 사흘의 교육연수가 있다.


‘...

물꼬라는 공간부터 말씀을 좀 드리려 합니다.

스물두 살에 시작한 일을 낼모레 쉰이 된 지금까지 해오고 있지요.

혼자라면 못했을 일이었다마다요.

저를 비롯해 그 누구도 임금이 없이 자원봉사로 꾸리는 공간으로

교육프로그램과 후원을 통해 1년 가운데 6~7개월을 살고,

나머지 모자라는 부분은 제가 바깥 강의와 글쓰기들을 통해 살림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아이들만 해도 참가비를 낼 수 없는 아이들에서부터 보육원 아이들도 함께 합니다.)

가난한 산골살림이지요.

물꼬의 교사라고 하면 대부분이 초등학교 때 이곳에서 계자를 경험하고

새끼일꾼이라는 중고생 자원봉사를 거쳐 대학 이후 손발을 보태며

돈을 벌면서도 논두렁이라는 후원회원이 되어주는 이들입니다.

그들이 결혼하여 아이가 자라 여기 오기도 하고,

그들의 혼례에 주례를 서기도 하는 세월이었지요.

물꼬의 계자가 다시 찾아오는 아이들의 비율이 높은 편인데

도대체 무엇이 있어 저 아이들은 이 불편한 곳으로 다시 오는가,

그리고 선생들은 도대체 바보가 아닌 바에야 무엇이 있어

오래고 낡은 이 모진 곳으로 와서 아무 대가 없이 손발을 보태는가,

자주 숙연해지고는 한답니다.

제가 산골에서 하는 일이란 그저 밥을 짓고 잠자리를 내며

아무 조건 없이 그 밥 먹고 잘 자고 세상으로 나가 한 걸음만 걸어다오,

그리 기도하는 일이지요.

그렇다고 대단히 헌신적이거나 도덕적이거나 정의로운 사람은 아닌.


물꼬의 선생들, 이곳의 불편함을 그들의 손으로 메우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때로 아이들이 다친 일이 있을 때도 우리들의 자신감(?)은

스무네 시간을 아이들 곁에 있다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계자 기간 저만 해도 두세 시간을 채 못자며 교무실을 지키고

수시로 아이들 잠자리를 살피며 보냅니다.

아이들의 모든 상황을 볼 수 있도록 교사들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하지요.

그날도 OO 곁에 저희들 있었습니다.

어머님께서 계자 직후 통화에서

‘이 일과 상관없이 아이들이 그래도 다시 가고 싶다고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머님,

사고만이 남기 쉬우시겠지만

아이가 보낸 대부분의 시간도 둘러봐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 시간 애쓴 선생들이 있고,

우리 OO도 즐거이 보냈습니다.

정말 얼마나 자주 환하게 웃고 떠들었는지 모를.’


그리고 실무적인 이야기들을 했다,

부모님의 요구에 대해 물꼬가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

지난 주말 161 계자를 무사히 마쳤다.

1994년 여름 첫 번째 계자를 시작으로

아이들 백 명 어른 서른 명의 규모가 있었던 적도 있고,

계절마다 몇 차례도 한 적 있었으니

그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머리가 ‘깨진’ 아이, 턱에 구멍 난 아이, 코뼈가 부러진 아이, 팔이 부러진 아이,

자주는 아니지만 몇 건의 사고도 있었다.

그런데, 물꼬에는 물꼬에 대한 많은 이해와 지지를 가진 학부모들이 주로 모이므로

그동안 다친 아이 문제가 그 계자를 넘어 문제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오히려 부잡한 아이로 걱정 많았겠다 위로를 받기까지 했다.

새삼 물꼬 학부모들이 깊이 고마웠다.

부모님들은 그런 신뢰로 아이들을 보냈더랬다.

다친 아이도 아이지만 가족들은 또 얼마나 애를 썼을까...

아이를 그렇게 보낸 죄에 조아리고 또 조아렸다.

그래도 그만해서 다행하고, 고맙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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