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맵다더니 봄날이다.

하늘 고맙다, 언제나 그래왔듯.


충남대 사범대에서 스물 가까이 되는 이들이 왔다; 특강 및 교육연수, 그리고 Work Camp

미리 목록을 보낸 식재료에다 지내면서 먹을거리들도 넘치게 싣고,

삽이며 괭이며 삼태기며 작업도구들도 들여왔다.

"이번에도 인물로 뽑은 모양이지?"

준수한 청년들이었다.

물꼬의 품앗이었고 논두렁인 이주욱 교수님 동행하셨다.

늘 그랬듯 여름엔 예취기를 겨울엔 엔진톱을 쥐신다.

나는 아직 그런 ‘교수’를 본 적이 없다.

존경하는 그가 벗이고 물꼬의 논두렁임이 자랑스럽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끊임없이 주위를 살피며 지낼 것이고,

늘 긴장하며 살수는 없겠지만 삶의 모든 순간이 모여 내 삶을 이루므로

이곳에서 우리는 ‘정성스럽게’ 지낼 것입니다, 절 하나도.”

안내모임을 하고 낮밥을 먹고

‘소금꽃 1’이 진행되었다.

일 많은 산골살이, 고래방 앞에 있는 소도를 소나무 곁으로 옮기는 일과

학교 뒤란 너머 쓰러진 나무들을 땔감으로 쓰기 위해 끌어올렸다.

(지난 청계에서 새끼일꾼들이 모래사장은 이미 옮겼더랬다!)

사람 손, 무섭다.

그 큰 나무들을 밧줄매어 그예 올렸고,

소도도 그림이 되어가더라.

소나무 곁의 토토로의 집도 철거 중.

“물꼬의 지형을 바꾸네!”


저녁밥을 먹고 수행방에서 ‘실타래’.

충남대로 가서 할 특강을 여기서 그리 하는 걸로.

물꼬에서 아이들과 하는 신라 화백제도의 재현 ‘한데모임’도 같이 꾸려진.

말하기 듣기, 그리하여 논의하고 설득하는 과정.

깊은 경청, 타인을 향한 따뜻한 마음, 침묵 한편 자기 소리 내기들이 이어졌다.


다음은 가마솥방으로 옮아가 ‘夜단법석’.

비로소 심드렁하던 얼굴들이 조금씩 다른 표정으로 바뀌어갔다.

돌아갈 때는 어떤 모습이려나.

자기를 쓸수록 깊이 배우리란 것을 아니

내일의 노동이 어제와 다른 나를 내놓으리라.

아, 돌림노래와 아카펠라를 익혀 공연도 했네.


오늘밤 뒤란의 아궁이 앞은 원규샘과 윤상샘, 그리고 이주욱 교수님이 지키기로 한다.

믿고 쓰는 원규샘과 윤상샘이라고

정말 샘들이 있으니 계자 끝낸 뒤 바로 이런 일정도 가능하다 싶은.

학생들은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할까,

교수님이 밤새 때준 구들방에서 잠을 자는.

방이 끓었다.


주욱샘과 원규샘은 물꼬에 올 때 꼭 아보카도를 구해온다,

한국을 나가지 않고 있을 때 가장 먹고 싶은 것이 아보카도라 했더니.

수년 째 이 산마을에서 아보카도 구경을 그리한다.

이번 일정을 계획하며 주욱샘이 맨 먼저 던진 말,

“옥샘, 이번에도 아보카도!”

“겨울엔 맛없거든.”

그런데도 굳이 사왔다.

좋아하는 것을 잊지 않고 챙겨주는 마음이 아보카도보다 맛나다.


언론을 끊고 사는 줄 아는 벗들이 신영복 선생 타계 소식을 전해오다.

연규샘도 문자를 보내왔다.

‘... 신영복 교수님 서거소식을 들었어요.

옥샘이 물꼬에서 요새에 쓰신 말, 밤산책을 하며 하신 말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산다는 것은 뭘까...

큰별이 또 져서 마음이 허한테, 우리는 그래도 계속 빛나봐요...’

다리가 후들거렸다.

고 박종철 선배의 동기들과 선생님을 뵌 적 있다.

그때 댁의 아이가 여섯 살이었던가.

시대의 스승이었던 당신이셨으니 내겐들 왜 아니었겠는가.

이 겨울에 또 큰 스승 한 분을 보낸다. 지독한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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