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공부 다녀오다.

전국이 영하 십 몇도 씩 예사로 내려가는 날들이었다.

거르지 않는 아침 수행이 열기를 만들어주다.


오래 전 판소리 명인 인간문화재 성우향 선생님으로부터 김세종제 춘향가를 받았다.

대학 동아리에서 뵌 적 있었고,

90년대 초반 다시 소리를 배우러 들어갔고, 아이들과 잘 나눠왔다.

(선생님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1년 뒤 삼풍 추모제에 오셔서 소리를 들려주기도 하셨네.

아, 그때 삼풍 주차장에서 살풀이를 추기도 했다. 내 그리 춤춘 날도 있었고나.)

하지만 늘 모자라는 공부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더 늦기 전 해야겠다 마음먹었으나

2014년 5월 1일 세상 버리신 선생님을 뵐 길 없어 애석함만 컸다.

그리고 이 겨울, 굳은 마음으로 지리산에 공부를 들어가게 되었는데,


낮밥을 해먹고 대해리를 나서다.

눈보라 휘몰아치고 길은 미끄러워 마을을 빠져나가는 그 길지 않은 시간에도

몇 차례나 되돌아와야만 하는 건 아닌가 망설이기도.

내리 5시간을 운전하는 동안 눈이 멎어있는 곳이 없었다.

무슨 대단한 공부를 떠난다고...

등이 결려 파스를 붙여가며 여러 날을 고생했네.


대해리에선 아침저녁 기온을 알려왔다.

영하 12도, 영하 17도, 영하 13도, 영하 18도...

몇 해 전 영하 20도까지 여러 날 내려갔던 그해

모둠방 보일러가 터져 애를 먹었던 적 있어

학교아저씨는 연일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계셨다.

섬진강도 언 날씨,

산에 푼 짐을 거두어 마을로 내려왔고, 바로 앞 섬진강 휘도는 한 객사에 방을 얻었네.

멀리서 벗이 등산내복을 보내주었다.

그 편에 에베레스트 사진과 물꼬 둘레 지도가 함께 왔네.

마음 써준 고마움!

앞에 룽따가 날리는 에베레스트 사진을 놓고 하는 아침 수행이었다.


동편제 강도근 선생의 소리를 받았다.

구례-하동-광양을 넘어나던 시간.

아침에 소리공부, 오후에는 공연(이라고까지야...)을 다녔다, 마지막 날 올 때까정.

선생님은 그렇게 소리를 단련시켜주시더라. 간을 키워주신 게지, 바로 무대에 세워.

“소리는 담백하게, 잡소리가 안 들어가도록. 아래소리는 꾹꾹 눌러서!”

백양산 산자락 목사님 한 분은 섬진강 끝에서 잉어를 잡아 저녁 초대를 해주셨고,

효소를 잔뜩 실어 응원도 해주시다.

소리 배우는 이들과 만나 차를 달이며 소리 잔치도 했던 어느 오후도 있었고나.


꽃구경 나선 날도 있었네.

소학정마을 들머리에서 피어 언 백매를 보다.

얼마쯤 지나 어느 집 마당 흐드러진 홍매도 보았더라.

핀 것들은 얼어 시들거렸으나 망울들은 눈발 속에 탱탱하게 오르고 있었다.

눈물이 차오르는.

가짜가 아니라 ‘진짜’에 대해 생각하다.

매화는 추울수록 향기를 안으로 모은다지.

아무리 모질어도 몸을 팔지 않는다, 누가 그리 표현하기도 하데.

그날, 단원고 졸업식에 새떼가 날아들었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언론을 끊고 사니 소식이 더디다.)

아, 그 애잔함과 설움과 분노가 소리에 얹히더라.


물날엔 청학동에 들어가 서당에서 아이들과 놀기도,

배운 가락이 뭐라고.

널린 책들도 정리하고

방을 같이 치우기도 하고 손톱도 깎아주고 이야기도 들려주고 대동놀이도 하고

아이들 호구조사하며 마음도 어루만지고.

살아온 세월이 무섭지,

아이들과 그렇게 바로 뭔가를 좀 전까지 같이 있었던 양 하게 되더라.


꽃 피면 들썩일 고장이라 걸음이 어디 쉬울까.

주말에 있는 ‘발해 1300호 18주기 추모제’가 아니라면

나선 김에 한 열흘 공부를 더했으면 싶은 마음 간절했던.

‘한국의 아름다운 길’ 보러 차들 늘어서기 전 며칠 또 가려마 하는.

좋은 선생님을 두는 일은 또 얼마나 큰 복이던가.


그물질하듯 읍내 들어서며 도서관을 시작으로 몇 곳을 들러 일들을 챙기고

마을로 들어오며는 길이 얼어 학교까지 들어오지 못한 택배도 찾고.

밀린 일을 시작하기 전 교무실 청소부터,

그리고 비운 부엌살림을 살피다.

다음 일은 다음 걸음에.

주말엔 ‘발해 1300호 18주기 추모제’를 물꼬에서 하네.

들어오는 길이 좀 녹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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