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17.물날. 맑음

조회 수 694 추천 수 0 2016.03.09 15:01:38



밤길, 조각달에 훤했다. 오랜만에 맑은 밤하늘이다.


어제는 오후에 날이 괜찮겠다 하고 돌탑을 쌓기 시작해볼까 나갔다가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돌을 놓고 연탄재를 깼더랬네.

오늘은 낮 기온 영상으로 간다 풀리겠다 했으나, 여전히 쌀쌀했다.

아침은 몹시.

해지고야 두말할 것 없이.

그래도 낮엔 어깨는 펼 만.

이리 쓰고 있으니

문득 산골 삶의 나날에서 날씨가 참 큰 자리이구나 새삼 생각게 되네.


스무하루 동안의 치유 일정 여드렛날.

같이 수행하는 몽고는 티벳 대배 백배에서 아흔아홉배에 이르렀다.

만세!

작은 성취들이 모여 성과가 된다. 힘이 된다.

그래서 자꾸 작은 일에 정성스러움을 말하는 것.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물꼬에서 구호처럼 쓰이는 이 말은

결국 정성스럽게 살기가 아니겠는지.


그런데,


머리를 감으러 들어갔다 샴푸통을 들다가

미끌미끌 덕지덕지 온통 비누가 묻어있는 것을 보았다.

치유 일정에서 일상훈련을 하고 있는 아이가 앞서 쓴 흔적이다.

한숨에 짜증스러움이 뱄다.

아, 정말 스무 살도 넘어

어쩜 이리 하나부터 열까지 구석구석 이런단 말인가 싶은.

많이 고단한 탓도 있을 것이다, 뒤끝이 야물지 못했던 건. 그도 나도.

날 차고, 오늘 달골에서 콘크리트 기둥을 내리느라 힘쓴 탓도.

배 나온 짜증스러움은 간밤 잠을 설쳤던 까닭도 없잖아.

일반학교라면 이런 게 다 무슨 문제이겠는가.

여기니까, 물꼬에서는 이런 게 중요하니까.

이곳에선 그런 걸 공부 삼고 있으니까.

헌데, 내가 요구하는 수위가 높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친다.

나 역시 일 잘하고 손 매운 어르신들 눈에 성에 차겠는지.

자, 그 수위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참, 고전강독과 바느질을 막 끝내고 오후 일정을 닫으려는 무렵

면소재지 장순샘한테 전화가 들어오다.

패 낸 이웃의 포도밭 한 곳에서 콘크리트 기둥들이 나왔는데,

달골에 쓰이지 않겠는가, 실어가 놓자는 제안.

(FTA로 포도 공급을 조절하기 위해 정부는 포도밭을 패 내는 농가에 지원금을 주었고,

올 겨울을 지나며 그 많던 포도밭들이 묵정밭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농산물들이 그리 영토를 잃어 가면,

그만큼 자급율은 더 떨어질 테고,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우리들의 삶은 어찌 될 것인지...)

다행히 응달진 곳도 눈이 다 녹아 화물차가 오를 수 있었다.

온 식구들이 올라가 힘 좀 썼네.

달골 명상정원 만들기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발걸음을 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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