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기막힌 날씨라니.
어제 아침 우박 떨어지는 하늘이더니
희중샘네 맞으며 씻은 듯이 나은 병 같았는데,
삽질하고 들어오니 비 내리고,
사람들 다 돌아가자 장맛비같이 굵어졌더라.
달골에서 사람들이 봄처럼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을 먹고 떠나리라던 희중샘네,
친척 분 부음을 듣네.
먼저 서둘러 나가게 되다.
게다 가게를 맡기고 온 가족이 여기 건너와 있으니...
그래서 ‘해건지기’를 밀고 밥 먼저 먹기로 하다,
돌아가는 먼 길, 모여앉아 밥 한 끼라도 더 하자 하고.
아들이 긴 시간 자원봉사를 한 곳에 마침내 부모님들까지 걸음 한 인연이라니.
김동현 아버님은 올 한 해 한약학과 마지막 학년도를 맞고도 계시다.
따스하고 강한 목소리는 건강하게 살아오신 세월에서 나왔음이라.
‘안기’.
한 생을 살아내느라 애쓴 나를 안아주고,
그렇게 그대 생도 수고로웠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다른 이를 안아주고,
삶의 어느 지점 이렇게 어깨 겯고 함께 걸었다 반갑고 고맙다 안아주고.
“사람 모였을 때 한 30분만 움직여볼까요?”
위를 좀 비우고 수행을 하자 삽들을 들고 마당 건너 소도 쪽으로 가다.
그네 뒤 오랫동안 거름더미처럼 흙더미처럼 나무 켜고 남은 톱밥이
오랫동안 작은 구릉이고 있었다.
남새밭으로 넣기로 한다.
사람 손, 그거 참말 무섭지.
기표샘이 곡괭이로 언 바닥까지 파주면 화목샘이며 모두 삼태기로 옮기니
이산(移山)이었어라.
들어와 그제야 ‘해건지기’.
봄을 맞아 경사 있으리라, 올 한 해 건너는 길에 다음 걸음을 걷는 한 힘 되시라,
수련이고 명상이고 기도.
가마솥방에서 갈무리 모임.
그리고 갈무리 글을 쓰는 동안
한 끼라도 바람 산 하늘 담은 예 밥상 들고들 나서시라,
늦은 아침이었으나 점심 밥상을 내다.
그런데, 이런! 커피를 한 주전자나 내려놓고 맛도 못 보이고,
으윽, 꾸러미 꾸러미 싸둔 곶감도 챙겨 보내지 못했고나.
귀옥샘, 아이 때문에 계자로 연을 맺어 밥바라지를 오신 지난겨울이었더니
이제 당신에게 더 큰 의미로 물꼬를 안고 계셨다.
우리 어른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게 아이들을 돕는 것이라.
군대를 다녀오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화목샘은 그 시작을 의미 있게 예서 같이 했네.
봄학기를 끝내면 교환학생으로 다녀올 연규샘도 마음 준비를 좀 하였을라나.
열 살에 처음 물꼬에 발을 들였던 기표샘,
봄여름가을겨울을 여기서 다 보내더니
새끼일꾼 되고 품앗이 되고 군대를 다녀오고 교환학생 다녀오고 낼모레 대학 졸업.
이제 여자 친구를 데려왔다!
아들이 장가간다고 데려온 여자처럼 마음 얼마나 여러 가지던지.
긴 세월이 아이들과 그리 지난다.
초등 4년 우석이도 그 같은 긴 날의 성장사에 동행할 수 있길.
사람들 떠나자 시커매진 하늘이 그만큼 무거운 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김명순님 만들어준, 솜을 집어넣은 여러 물고기들을 굴비처럼 엮어
복도 한 벽기둥에 매다니 멋진 액자가 되었네.
농사철이라 저녁 밥상에만 같이 앉자 부른 장순샘,
처음부터 일정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다.
아, 그랬구나, 농사철이 시작되어 바쁠까 봐 말도 꺼내지 못했는데,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이런 시간에 대한 목마름이 있을 수도 있었겠고나.
모르지, 말 안 하면 모르지.
다음엔 전체 일정을 같이 해보기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펑펑 내리던 눈이 싸락눈으로 변하더니 밤, 다시 펄펄 휘날렸다,
바람 차기도 차고.
‘스무하루 동안의 치유일정’ 열아흐레째인가.
사람들이 우르르 비운 뒤 잠시 숨 돌리고
낮 3시 모여 바느질도 하고, 눈바람 인다고 밤엔 방에서 고전 강독.
며칠 전 호되게 앓은 장염(이었다고 짐작하는)탓인가
징검다리 건너다 빠진 것처럼 몸은 그렇게 이가 빠지고는 하더라.
사람들 보내고서 류옥하다 시켜 부항기로 사혈을, 그리고 뜸을 떴다니
봄기운이 몸에도 번질세.
아, 저기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