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하는데...

안락한 자리만을 바라지.

그런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마음은,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말지.”

아르튀르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착란’ 가운데서, 재인용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한다!

관계에 익숙해져 설레고 정성스러웠던 마음을 더는 쓰지 않을 때의 슬픔으로도 읽히고.

사랑은 입에 발린 노래가 아니라

그를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는 강력한 발언일지도 모르겠다고도 해석.

또 다른 때는 또 다르게,

그대는 또 다르게, 또 다른 그대는 또 다르게도 읽으리.


풀린, 그런데 다시 기온이 조금씩 내려간다.

참기름을 짜고, 떡을 하고, 김치를 담고, 남새밭에서 난 푸성귀를 다듬고,

그걸 병(가벼운 페트병이 어디 있었던 시절인가)이며 보따리며

보자기 보자기 싸거나 가방에 차곡차곡 넣어

이고지고 그렇게 대처 자식네를 방문하고는 하셨던 외할머니.

우리 집 만의 풍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꼭 자식만이 아니라 어디 친척 댁을 방문할 때도

그 보따리에 실린 자상함이야 덜했을지 몰라도 보퉁이는 변치 않았다.

서울 길, 이 산마을에서 나눌 수 있는 것들을 싼다.

물꼬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젊은 벗들이며를 만날 일들이 이틀이다.

지난 2월 10일부터 어제까지

‘스무하루 동안의 치유 일정’ 동안 바깥을 나가지 못 한다 선언하고

드나드는 이들과 수행한 날들이었다.

여느 2월이면 한 해 가운데 가장 느긋한 물꼬 일정이고,

그런 만큼 여기저기 인사를 넣고는 하는데,

하지 못했던 것을 새 학기 여는 날을 한 주 밀고 하기로 한다.


서울, 승호샘 충양샘 민기샘과 만나다.

발해 역사모임을 하는 벗들이고, 물꼬의 논두렁들이다.

왁자한 홍대 앞에서 서늘한 세월호 이야기를 꺼낸다.

그 배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 모두 타고 있는 세월호는 지금 어떻게 출렁이는가.

‘잊지 않기’를 애쓰는 노력이다.

만나면 사람들과 화제로 삼는다.

무엇이라도 해보려는.

앞뒤 다 놓고 사람부터 구하고 볼 일 앞에

자본 혹은 권력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그 칼이 나를 벨 수도 있었음을 알고 소스라쳐

내 일로, 내 아이의 일로 다시 또 생각해보고

이렇게 앉는 자리마다 우리가 기억할 수 있다면

설혹 지금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지라도

어느 날 “자, 모두 일어나서 같이 가자.” 할 때 어깨 겯고 움직일 수야 있지 않겠는지.


퇴계원, 선배 광섭샘도 만난다.

정수기를 만들 재료를 전해주기로 하셨더랬다.

정수기회사에서 관리하는 물,

그것 역시 전기처럼 외부 힘에 기대고 가는 삶이지 않은지.

비용도 비용이었고,

가랑비에 젖는 옷처럼 그렇게 비독립적인 삶의 구석이 물까지도 미처 있구나,

아뿔싸 한지 오래전부터였다.

아이들이 혹여 집단 식중독에라도 걸릴까 하는 걱정이 가장 컸는데

정작 정수기는 물맛이 더 중요한 목적이었다는 이야기에

그렇다면 더욱 정수기를 직접 만들어야겠다 생각.

그러고도 해를 넘겨 실행해보게 되었네.


경기도 설악으로 걸음이 넘어갔다.

선배 은식샘의 커피공장을 만드는 곁에서 목공을 익혔고,

그때 같이 재밌게 일했던 사람들이다.

쌀이며 손발이며 목공일이며 두루 물꼬 일을 살펴주기도 한 그들; 태봉샘, 재교샘.

“옥샘, (물꼬를) 맨날 생각은 하는데, 해드리는 건 없고...”

“옥이누나 있을 때, 그때 같이 일하면서 정말 재밌었는데...”


받는 게 많은 논두렁 한 댁에

이 산마을에서 난 무엇이라도 나누자고 택배 하나 보내다.

받은 꾸러미를 든 아이 건호 사진을 보내온 인교샘,

‘이렇게 감동스러워도 되나...’ 했다.

민망할 정도로 작은 선물에 온 인사가 더 감동스러웠던.

사람 사는 기쁨들이 이런 것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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