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8.쇠날. 갬

조회 수 691 추천 수 0 2016.04.14 03:15:49


무슨 봄비가 수마처럼 할퀴었는가.

얼마 전 굴삭기 작업을 좀 했던 달골 명상정원 ‘아침뜨樂’에

마구 만들어진 물길들이 심어둔 나무들을 흔들었다.

다음 굴삭기 작업은 언제일지 모른다,

장비를 구하기 쉽지 않은 계절이라.

그 전에 더한 피해가 없도록 여기저기 삽질을 하다,

물길을 한 곳으로 모으는.


윽,

무슨 생각을 그토록 골똘히 했던 걸까.

흐드러진 벚꽃 그늘 때문이었을까.

모퉁이 길에서 안내판을 열심히 읽고 있던 처자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 채 보던 것에 계속 집중하고 있었다.

치일 뻔한 것이다. 다행히 천천히 가고 있던 길이어...


불날 나무날 쇠날 저녁 시간에 아이 하나 만난다, 치료가 목적인.

쇠날은 물꼬 일정 봐가며 조절키로.

돌아오며 마트에 들렀다.

하하하, 한참을 웃었네.

물꼬에서 사는 삶이 그러한 것인지

보편의 경험을 갖지 못한 구석이 많다.

들여오는 물건이라야 몇 가지 되지 않고,

그나마도 거의 지정된 물품이다.

가난해서도 그럴 테고, 가난하고자 해서도 그럴.

그런데, 오늘!

고민하지 않고 바구니에 몇 가지를 더 집어넣었다.

그런데, 그 물건이란 게 겨우 해물 한 가지, 과자 두어 봉지.

그 검박한 모습이 병아리 같아 웃었고,

그런 마음이 쇼핑으로 스트레스 푼다는 이들의 마음이겠구나 짐작해서도 좋았고나.


몸이 떨릴 때가 있다.

어떤 일에 대한 분노가 혹은 슬픔이 시간이 지나서 더 커질 때가 있다.

충격을 받고 그 순간은 그것의 강도를 몰랐다가

파도처럼 덮치기도, 태풍처럼 몰아치기도.

분노 때문인지 잃은 절망으로 인한 것인지

따뜻한 방인데도 떨리는 다리가 멈춰지지 않아 한참을 껴안고 있었다.

뜻밖에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을 잃거나 사람을 잃었을 때 그랬을.

이제 갈수록 그럴 일이 많아진다, 나이 먹으니.

나이를 나만 먹는 게 아닐 것이니 곁에서들 그렇게 훌쩍 떠나기도.

갈 사람 가고 살 사람 살며 생이 간다...

이틀을 내리 날밤을 새고도 이 밤 말짱하다.

사람은 어디까지 깨어있을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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