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15.쇠날. 맑음

조회 수 972 추천 수 0 2016.04.19 01:47:45


수수꽃다리도 한껏 피었다.

고래방 앞쪽 복사꽃도 앵두꽃도 흐드러진다.

통상 꽃 지고 갑자기 덮치듯 오는 푸름인데

꽃도 지기 전 겁나게 올라오는 녹음이다.

며칠 가마솥방으로 가는 걸음이 환하다.

그게 말이다, 밖에서는 시선이 분산되지만

설거지를 하다 고개 들면 있는 창을 자목련이 채우고 있다.

자목련 그만 보인다.

우리를 살리는 것들이 또 이렇게 있어 살.

그건 그리운 이름 하나이기도 하다.

그가 거기 있다.


정채봉의 시 한 편이 마음에 머물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원이 없겠다고,

그러면 ‘한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는.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아, 사람들은 물꼬에 일러바치러 오는데...

오늘은 나도 일러바치고 싶다, 숨겨놓은 세상사 가운데 딱 하나!


한밤 시인인 후배가 전화를 넣었다,

30년 전 유달산에서 가부좌로 앉아 글을 쓰던 누나 모습이 자기를 시세계로 끌어왔다는.

그는 쓰고 또 썼고,

몇 해 전에는 신춘문예로 등단을 했다.

그 오래전의 여행길을 그려놓은 그림으로 읽듯 전하더라.

사람이 사람으로 놓는 수만한 것이 또 있으랴.

아, 그런데 정작 나는 시를 쓰지 않는다...

시 쓰고 싶은 밤.

“그런데 누나, 엊그제 인사동에서 사람들하고 술을 마시는데 누나를 아는 사람이 있더라...”

그 동네 떠난 뒤 20년도 넘어 되는 걸

사람의 꼬리가 참말 길다!


내일은 세월호 2주기...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4324 2009. 4.18.흙날. 맑음 옥영경 2009-04-29 1117
4323 2008. 7.15.불날. 소나기 옥영경 2008-07-27 1117
4322 2006.12.13.물날. 밝은 흐림 옥영경 2006-12-15 1117
4321 2006.2.7.불날. 계속 내리는 눈, 2006학년도 신입생 결정 옥영경 2006-02-13 1117
4320 9월 4일 해날 흐리고 비 옥영경 2005-09-14 1117
4319 2010.12.10.쇠날. 맑음 옥영경 2010-12-27 1116
4318 2010. 3.11.나무날. 맑음 // 한 대학생의 자퇴서 옥영경 2010-03-23 1116
4317 2009. 5. 7.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9-05-14 1116
4316 2008. 9.16.불날. 맑음 옥영경 2008-10-04 1116
4315 2008. 7. 1.불날. 흐림 옥영경 2008-07-21 1116
4314 2006.2.18-9. 새밥알 준비모임 옥영경 2006-02-27 1116
4313 4월 19일 불날 일어나니 젖어있는 땅 옥영경 2005-04-23 1116
4312 2011. 8.27.흙날. 갬 옥영경 2011-09-08 1115
4311 2010.12.24.쇠날. 싸락눈 내린 새벽 옥영경 2011-01-01 1115
4310 2011.12.27.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2-01-03 1114
4309 2011. 2. 3.나무날. 질척거리기 시작하는 쌓인 눈 옥영경 2011-02-23 1114
4308 9월 빈들모임 닫는 날, 2009. 9.27.해날. 비 옥영경 2009-10-06 1114
4307 2006.10.24.불날. 맑음 옥영경 2006-10-27 1114
4306 7월 2일 흙날 또 비 옥영경 2005-07-13 1114
4305 2011.10.16.해날. 갬 옥영경 2011-10-21 111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