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0.나무날. 뿌연 하늘

조회 수 800 추천 수 0 2016.10.24 10:44:28


산국이 곱디 곱다.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일어나는 훈련을 한 거구나,

아침마다 하는 티베트 대배를 포함한 수행이 나를 살려냈고나,

이렇게 안 먹고 이렇게 안 자고서 사람이 살 수 있는가 싶었던 보름 남짓이었다.

하기야 작정하고 하는 단식이야 스무하루를 해본 적도 있었더라만.

오늘도 아침 해건지기는 계속 되나니.


어제그제 달골 지하수 보수공사를 했고,

어젯밤 흙탕물을 한참을 뺐지만 아침 아직도 맑아지지 않더라.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워라며 아래위 욕실을 청소했다.

밤에 수도를 더 틀어 놓았다.

이제 좀 맑으려는데, 갸우뚱.

내일 빈들맞이 청소를 하고나면 아주 맑은 물에 이르리라 한다.


간밤 아주 늦은 시간 긴급 상담 요청.

홀로 고교생 아이를 키우는 아비.

아이랑 하는 갈등을 아들과 주고받은 문자를 길게 길게 보내왔다.

아비로서 자신의 문제가 뭔지 알지만

비뚤어져가는 아이 앞에 어찌 안 된다고.

가출한 아이가 돌아오면 물꼬로 데려와 상담키로, 위탁교육을 해보기로도.

많이 부끄럽다고 했다.

무슨! 너나 나나 별 다르지 않지.

아이는 같이 키우는 거다.

내 아이 저가 살펴주고, 제 아이 내가 살펴주고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거지.

나로 모자라니까.

아이 하나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단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같이 한번 어루만져보세.


살이 왜 그렇게 빠졌어?

오랜만에 보는 이들이 자주 하는 말.

그랬다면 뼈밖에 남지 않았을 게다.

그러니 늘 좀 가늘었던 듯.

오늘 몸무게를 쟀다.

맨날 듣는 인사로서가 아니라 정말 이 얼마동안 5kg이 덜어졌더라.

가을이라, 그것은 그리움의 무게였을지도 모른다 싶데.


아보카도가 왔다.

벗이 보냈다.

겨울엔 잘 먹지 않는 것인데 날 춥기 전에 보냈다.

좋아한다는 말을 흘려듣지 않고 그리 챙겨준 마음으로 가슴이 데워졌다.

“근데 이번만 받습니다!”

“고마워요, 이번만 받아서.”

유쾌하였네.


억울해 죽겠다, 그토록 자주 <우리는 왜 억울한가>,

책을 낸 한 부장판사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억울하게 느끼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타당한가를 따졌다.

계속해서 터지는 법조비리가 unfair에 대한 인식을 더 강하게 만든 것 같다고도.

그런데 법조인이 따지는 객관적 억울함이 아니라 개인이 느끼는 억울함이 초점이다.

당자자의 억울함을 최대한 살피기 위해 노력하고,

상대방이 명백히 거짓말을 해도, 지금 증거에 의하면 이렇게밖에 해결할 수 없다,

그렇게 공감하면 동의하지 못해도 억울함이 줄어들 수 있더라고.

그런데, 억울함에 대한 사회적 고찰도 고찰이지만

억울함과 서러움에 대한 한 구분이 나를 멈추게 한 게 이 이야기를 끌고 오게 된 배경이다.

억울한 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그러니까 남 탓이고

서러운 건 자기 신세 처량함이라.

억울함의 범용이 오히려 상황을 더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한동안 서러웠다. 그런데 그것을 억울함으로 생각했던 바가 없지 않았다 싶었다.

위로가 되더라.


새벽 3시, 마당에 내려서니 세우(細雨) 흩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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