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은 아이들이 치고 여행은 애썼다며 부모가 간다더니

한 것도 없이 잘 쉰 이틀이었다.

식구들이 모두 읍내에 공연 온 뮤지컬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도 보다.


언론을 끊고 살던 이조차 뉴스 앞으로 불려나오는 이즈음이다.

가끔 jtbc 뉴스룸을 뒤늦게 챙겨보고는 한다.

17일편은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를 '여객선 사고'로 규정하며 대응한 문건 소식을 전하고

친구야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주렴, 루시드폴의 '아직, 있다'를 틀었다.


그리고,

일과 일, 생각과 생각 사이에도

끊임없이 편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네 사랑에 부치노니-


누구나 이별을 겪는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내 이별이 가장 아프다. 고통이 언제나 그렇듯.

그리 오랜 날들도 아닌데 천년 같은 만년 같은 시간들이 흐르고,

불과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

마치 또 몇 백 년은 흐른 것만 같은 시간들이리.

그에게로 가는 길이 닫혀 있지 않은 것을 원망하며,

차라리 영영 가는 길이 막히는 게 낫다며

창 아래를 서성이거나 그가 오가는 역을 걷거나

수없이 머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과 실제에서 헤매기도 하리.

그러는 속에도 늘 하는 말이지만 ‘시간은 힘이 세서’

그제보다는 어제가 견디기 좀 더 낫고, 어제보다는 오늘이 조금 더 낫기도.

그렇게 내일은 모레는 더 나을 게다.

정녕 그리될 수 있다면. 있기를!


하루가 멀다 하고 자주 울컥하여 그만 털썩 앉기를 수차례,

헤어져야 할 까닭을 삼천사백스물한 가지를 생각해도

결국 보내겠다는 생각 앞에서는 그간 그가 못해준 것보다 내게 잘해준 것만 남고

내가 잘해주지 못한 회한이 소용돌이치고...

내일 일을 생각하기 쉽지 않다지만 시작하는 사랑 앞에서야 어찌 후일을 알았으리,

그 길 끝이 이리 어렵게 울퉁거릴 줄이야, 이리 깊고 깊은 늪일 줄이야...

그런 게 이별이더라.

놓은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내게 닿는 데 시간이 걸리고,

끊임없이 전화기를 만지며 그저 목소리만 들어도 좋겠다는 마음을

그나마 외면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닿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일 거라.


누가 누구를 알 수 있겠으며,

말이 어찌 다 글이겠으며,

마음이 어찌 다 말일 것인가.

바닥이 보이는 것이 사람이나

또 한편 그 심연을 모르는 게 사람이고,

자신도 자신을 모르는 게 또 그 심연일 터.


편히 보내는 일이 그토록 쉽잖은 게 이별의 일이라.

어리석다 탓하지 말자, 사람의 일이 그러하다 헤아리기.

많이 좋아했구나, 그를...

퍽 그립고,

오래 그럴 것이지만,

나를 흔들어대는 시간은 조금씩조금씩 줄어간다,

그래서 사람이 또 산다.


생각의 끈이 싹둑 잘라지지 않지만

아무것도 남은 게 없을 때까지 바닥까지 긁어내고 나면

아프고 아프다가 웅크린 자신을 가만히 안아주는 날도 오고,

조금씩 내 말이 그에게까지 닿지 않음을 한 발 한 발 읽어도 가고

신호가 조금씩 약해지다 사라지는 날이 온다, 오고야 만다, 그예.

다만 쓸쓸할 것이다만.

아무쪼록 그날이 가깝다면 다행할.


나는 나를 사랑하는 네가 좋았다,

그 말은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 너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로 치환할 수 있을 것.

지금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너, 그래서 그러므로 그대가 떠나올 수 있지 않겠느뇨,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제는, 이제는 그만 보내도록 하자.

네 사랑이 그리 얕은 것이었더냐, 이제 그만해주마,

그렇게 홀로 뱉고 이제는 그만 놓기로.


그러거나 저러거나 말이다, 말말이 길었고 어줍잖았다만

이 한 마디 하자고 글월이 여기까지 왔네, 어디로 가든 “네 사랑이 옳았다, 옳다.”

그때도 맞았고 지금도 맞다!

우리가 한 모든 사랑은 그러했을지라.

내일도 그러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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